중국의 자연환경은 어떻게 음양오행과 연결되었을까?

안녕하세요.

“사주명리의 첫걸음, 초코서당”
에디터 초명입니다.

오늘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음양과 오행이 중국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사주명리학에는 학문적 근간을 이루는 몇 가지 중요한 체계가 있습니다. 음양오행과 간지도 그중 하나죠.

일단 음양만 이야기해볼게요. 음양은 세상의 변화와 현상을 서로 대비되는 두 성질로 구분해 이해하려는 방식입니다.

밝음과 어둠, 낮과 밤, 따뜻함과 차가움, 움직임과 멈춤처럼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음과 양으로 나누어 바라봅니다.

중요한 것은 음과 양을 완전히 분리된 두 존재로 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찾아오듯 음과 양은 서로 교차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양뿐만 아니라 오행, 그리고 간지 역시 오늘날 세상 만물을 설명하는 보편적인 원리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자연의 변화뿐 아니라 계절과 방위, 색상과 맛, 인간의 성정까지 여러 현상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음양에서 분화한 오행의 기운은 각각 고유한 운동성을 지니며, 여러 자연현상과 연결된다고 여겨집니다. 예를 들어 목(木)은 봄과 동쪽, 푸른색, 신맛, 인(仁)을 상징하고, 화(火)는 여름과 남쪽, 붉은색, 쓴맛, 예(禮)를 뜻하죠.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러한 대응관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절대적인 법칙이었을까요?

오늘날에는 오행과 방위의 관계를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만, 그 배경을 살펴보면 고대 중국인들이 자신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관찰하고 이해했던 방식이 깊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음양오행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고대 중국의 지리와 기후, 계절의 변화와 생활 경험 속에서 형성된 하나의 인식 체계라는 겁니다.

오늘은 오행의 방향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정해졌는지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음양오행을 만들어낸 중국의 자연환경부터 살펴보려 합니다.

*아래 글은 향후 책으로 출간될 예정인 원고의 일부입니다. 본 글은 작성자의 창작물로서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모든 내용의 저작권은 작성자에게 있습니다. 작성자의 사전 동의 없이 본 자료의 일부 또는 전체를 무단으로 복제·배포하거나, 수정·편집하여 2차적 저작물로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무단 사용이 확인될 경우 저작권 침해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상나라의 은허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

중국 문명의 주요 발상지는 황하 중·하류 지역이었습니다. 특히 은허의 유물은 황하 중류가 상나라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주나라는 섬감고원과 경위평원에서 성장한 뒤 중원으로 진출해 상나라를 멸망시켰고,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면 중국 문화의 범위는 황하 유역을 넘어 장강 유역까지 점차 확대됩니다.

중국의 중심 지역은 북쪽과 서쪽의 사막과 고원, 동쪽의 태평양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와 어느 정도 단절된 환경이었습니다. 반면 내부에는 넓은 평야와 큰 강줄기가 발달했고, 기후도 농업에 비교적 유리했지요.

특히 고대 황하 유역은 지금보다 따뜻하고 습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정착 생활을 하기 좋은 환경이었던 셈이에요.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계절과 기후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언제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해야 하는지를 아는 일이 곧 생존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고대 중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해와 달,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파악했고, 이를 바탕으로 역법을 발전시켰어요.

역법은 단순히 날짜를 세기 위한 달력이 아니었습니다. 농사의 시기를 정하고, 제사를 지내고, 행정 업무를 운영하는 등 국가의 중요한 활동을 조직하는 기준이었습니다.

반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지식이 발달했습니다.

그리스는 산지가 많고 경작지가 좁아 농업보다 항해와 해상무역이 발달하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바다를 오가기 위해서는 방향과 거리,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했지요.

그 결과 중국에서는 시간과 계절을 다루는 역법이 크게 발달했고, 그리스에서는 공간을 연구하는 기하학이 발전했습니다. 서로 다른 자연환경이 서로 다른 방식의 지식 체계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발전한 역법이 음양오행, 간지와 결합하면서 단순히 날짜를 계산하는 체계를 넘어 자연의 변화를 읽는 방식으로 발전했습니다.

그 바탕에는 복잡한 자연현상을 일정한 범주와 관계로 나누어 이해하려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먼저 낮과 밤, 추위와 더위처럼 서로 대립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음양으로 설명했고, 이후 그 변화가 나타나는 여러 양상을 오행으로 나누어 이해하게 되었지요.

오행은 계절과 방위, 기후와 다음과 같이 연결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대응관계를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목은 동쪽이고, 금은 서쪽일까요? 왜 남쪽에는 화를 두고 북쪽에는 수를 배치했을까요?

이 역시 고대 중국의 자연환경과 함께 살펴봐야 쉽게 이해가 가능합니다.

당시 중국인이 주로 활동했던 공간은 북쪽으로 연산산맥, 남쪽으로 오령, 서쪽으로 청장고원, 동쪽으로 해안선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황하 중·하류의 중원(中原)이 자리하고 있었지요. 은나라의 도읍이었던 안양을 비롯해 장안, 낙양, 개봉 등 역대 왕조의 주요 도시들도 대부분 중원과 그 주변에 위치했습니다.

중원은 단순히 지리적인 가운데를 뜻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와 문화, 농업 생산의 중심지였고,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중심과 같은 공간이었어요.

토(土)는 만물을 길러내고 서로 다른 계절과 방위를 이어주는 성질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런 토의 성격과 중원의 위상이 맞물리면서 토가 중앙과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쪽의 화(火)와 북쪽의 수(水)는 어떨까요?

중국 대륙은 대체로 남쪽으로 갈수록 따뜻하고 북쪽으로 갈수록 춥습니다. 사람들이 남북을 오가며 직접 경험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한 차이지요.

그래서 남쪽은 여름과 더위, 불의 성질을 지닌 화와 연결되었고, 북쪽은 겨울과 추위, 물의 성질을 지닌 수와 연결되었습니다.

목(木)이 동쪽에, 금(金)이 서쪽에 배치된 이유 역시 중국의 지형과 기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지형은 대체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습니다. 서쪽에는 청장고원을 비롯한 고원과 산지가 자리하고 있고, 동쪽에는 넓은 평원과 해안이 펼쳐져 있지요.

황하와 장강을 비롯한 주요 하천도 높은 서쪽에서 낮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향합니다.

동쪽은 바다와 가까워 상대적으로 습하고 강수량도 많습니다. 특히 여름에는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따뜻하고 습한 계절풍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이런 환경은 초목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동쪽은 봄과 생장, 발산을 상징하는 목(木)과 연결되었지요.

반면 서쪽으로 갈수록 바다에서 멀어지고, 고원과 산지가 많아지면서 기후도 점차 건조해집니다.

비가 적고 메마른 서쪽의 환경은 가을의 건조함과 수렴하는 성질을 지닌 금(金)과 연결되었습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오행의 방위는 아무 이유 없이 임의로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고대 중국인들이 실제로 경험했던 지형과 기후, 계절의 특징이 오행 체계 안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음양오행은 고대 중국인이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고, 그것을 일정한 범주와 관계로 정리한 인식 체계입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중국을 비롯한 북반구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음양오행을 지구 어디에서나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요?

남반구에서는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입니다. 우리가 여름일 때 남반구는 겨울이고, 우리가 겨울일 때 남반구는 여름이지요.

사주명리학에서 남반구의 사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음양오행은 시대와 지역을 넘어 언제 어디서나 통용되는 신비한 우주의 기운일까요?

아니면 고대 중국인이 자신들이 살아가던 자연을 관찰하고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인식 체계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음양오행의 개념만 외우는 것보다, 그것이 어떤 자연환경과 사고방식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목은 왜 동쪽에 놓이고, 화는 왜 남쪽에 놓였는지 같은 오래된 대응관계도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음양오행이 무엇을 설명하려 했는지, 또 오늘날 우리가 그것을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을지도 조금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사주명리의 첫걸음, 초코서당”
에디터 초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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