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적은 왜 노란 두건을 썼을까? / 오행과 관련된 흥미로운 중국 역사 이야기(Feat: 오덕종시설)

안녕하세요.

“사주명리의 첫걸음, 초코서당”
에디터 초명입니다.

『삼국지연의』를 읽어본 분이라면 이야기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황건적을 기억하실 겁니다. 후한 말 장각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규모 반란 세력이죠.

황건적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노란 두건을 쓴 무리’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장각을 따르던 사람들은 머리에 황색 두건을 둘러 자신들을 구별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기더라구요.

“황건적은 왜 하필 노란색 두건을 썼을까?”

붉은색도 있고, 검은색도 있고, 흰색도 있는데 왜 노란색이었을까요? 단순히 사람들을 쉽게 구별하기 위한 색이었을까요?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는 분들이라면, 오늘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황건적의 두건 색깔은 바로 사주명리학의 핵심인 ‘음양오행설’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고대국가인 하, 상, 주 시대 이후에는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됐죠.

오늘은 황건적의 노란 두건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면서, 오행이 어떻게 자연철학을 넘어 왕조의 정통성을 설명하는 정치사상으로 사용되었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아래 글은 향후 책으로 출간될 예정인 원고의 일부입니다. 본 글은 작성자의 창작물로서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모든 내용의 저작권은 작성자에게 있습니다. 작성자의 사전 동의 없이 본 자료의 일부 또는 전체를 무단으로 복제·배포하거나, 수정·편집하여 2차적 저작물로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무단 사용이 확인될 경우 저작권 침해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전국시대에는 공자, 맹자, 노자, 묵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가 등장했습니다. 그야말로 매일같이 전쟁이 이어지고 기존의 정치질서가 흔들리는 혼란의 시대였어요.

사상가들은 저마다 세상을 다시 안정시키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유가는 인(仁)과 예(禮)를, 법가는 강력한 법과 제도를, 도가는 인간의 인위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자연의 질서에 따라야 한다 주장했어요. 그런데 이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의 원리를 설명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음양가(陰陽家)의 추연이었어요.

오늘날에는 공자나 노자에 비해 추연이라는 이름이 상당히 낯설게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전국시대 당시 그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사마천은 『사기』 「태사공자서」에서 당시 성행했던 제자백가를 여섯 학파로 분류하면서 음양가를 가장 먼저 언급할 정도였죠. 추연의 명성도 대단했습니다. 『사기』 「맹자순경열전」에는 추연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을 때 제후들이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양나라의 혜왕은 직접 교외까지 나와 그를 맞이했고, 조나라의 평원군은 그에게 예를 갖추어 옆으로 비켜 걸었습니다.

연나라의 소왕은 더욱 극진했습니다. 직접 빗자루를 들고 앞장서 길을 쓸 정도로 추연을 존중했고, 제자의 자리에 자신을 두고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청했다고 해요. 『사기』는 이러한 추연의 대우를 공자와 맹자에게 비교하기까지 합니다.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궁한 일을 겪었고, 맹자는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지만 추연은 가는 곳마다 제후들의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추연의 학설이 당시 제후들이 꼭 필요로 하던 정치적 논리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추연은 음양과 오행을 이용하여 자연의 변화 원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까지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는 하나의 왕조가 일어나고 쇠퇴하는 과정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왕조는 단순히 힘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쓰러뜨리면서 우연히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라는 다섯 가지 덕이 일정한 순서로 변화하면서 천하의 주인도 함께 바뀐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을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오덕(五德)은 바로 목·화·토·금·수의 오행을 말하죠. 종시(終始)는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가 시작된다는 뜻이에요.

쉽게 말하면 하나의 왕조에는 그것을 상징하는 오행의 덕이 있고, 그 덕이 다하면 새로운 덕을 지닌 왕조가 등장한다는 사상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오행에는 크게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의 두 관계가 있습니다.

추연이 왕조의 교체를 설명할 때 중요하게 사용한 것은 상극의 논리였습니다. 그의 학설에 따르면 우나라는 토(土), 하나라는 목(木), 상나라는 금(金), 주나라는 화(火)에 해당했습니다.

잘 보시면 여기에 일정한 관계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목은 토를 극합니다. 금은 목을 극하고, 화는 다시 금을 극합니다. 그렇다면 화덕(火德)을 지닌 주나라 다음에는 어떤 왕조가 등장해야 할까요?

당연히 화를 극하는 수(水)의 왕조가 등장해야 합니다. 추연은 바로 이런 식으로 역사의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전국시대의 제후들에게 이 이론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렸을 겁니다. 당시 각 나라는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수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어요.

하지만 군사력만으로 천하를 통일하는 것과, 그 통치를 정당화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싸움에서 이겼으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왕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어요. 새로운 왕조에는 이런 질문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하필 당신이 천하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까?”

추연의 오덕종시설은 여기에 아주 좋은 답을 제공했습니다.

“이전 왕조의 덕이 이미 다했고, 천지의 질서가 새로운 덕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된 것이다. 즉, 하늘이 나를 선택한 것이다.”

왕조 교체를 단순한 무력 정복이 아니라 하늘의 자연스러운 질서 변화로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때부터 오덕종시설은 자연철학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왕조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정치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거죠.

그리고 이 이론을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진시황입니다.

기원전 221년, 진왕 영정은 경쟁하던 여섯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전의 왕과 구별하기 위해 새로운 칭호를 만들었어요.

바로 황제(皇帝)입니다. 우리가 흔히 진시황(秦始皇)이라고 부르는 인물이죠.

진나라는 강력한 군사력과 법가적인 통치체계를 바탕으로 중국을 통일했습니다. 군현제를 시행하고, 문자와 화폐, 도량형을 통일했으며, 도로의 규격도 정비했습니다.

하지만 진시황 역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왜 진나라가 천하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가?”

무력으로 여섯 나라를 정복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새로운 통일제국의 출현을 하늘의 질서와 연결할 필요가 있었어요. 여기에서 추연의 오덕종시설이 활용됩니다.

『사기』 「진시황본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논리는 간단합니다. 주나라는 화덕(火德)의 왕조였습니다. 그리고 수(水)는 화(火)를 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나라를 대신해 등장한 진나라는 수덕(水德)의 왕조여야 했다는 것이지요.

진나라의 통일은 단순히 힘센 나라가 약한 나라를 정복한 사건이 아닙니다. 오덕이 순환하면서 화의 시대가 끝나고 수의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진나라가 자신을 수덕의 왕조라고 규정하면서 실제 국가 제도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오행에서 수(水)를 상징하는 색은 검은색입니다. 그래서 진나라는 흑색을 숭상했습니다.

진시황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검은색 계열의 복식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진시황은 황하(黃河)의 이름을 덕수(德水)라고 바꾸기도 했습니다. 또한 수를 상징하는 숫자인 6을 여러 제도의 기준으로 사용했어요. 관모의 높이와 수레의 폭 등에 6이라는 숫자를 적용하고, 황제가 타는 수레에는 여섯 마리의 말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시간을 정하는 방식에도 이러한 사고가 반영되었습니다. 진나라에서 만든 역법을 전욱력(顓頊曆)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인월(寅月)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고 있잖아요? 하지만 당시 진시황은 전욱력을 정비하면서, 해월(亥月)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해(亥)는 방위로 북쪽에 해당하고, 북방은 다시 수(水)와 연결되지요.

즉 수덕이라는 정치적 이념이 단순히 “우리나라는 수의 왕조다”라는 선언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복식과 색깔, 숫자, 역법과 국가 제도에까지 영향을 준 것이었죠.

당시 오행은 단순히 자연의 변화를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국가의 정통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정치적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훗날 황건적이 사용한 ‘노란색’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는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이었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습니다. 기원전 221년에 천하를 통일했지만 기원전 206년에는 이미 멸망했어요.

이후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우지요.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날에는 간단한 문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나라가 어떤 덕을 가지고 있는지는 새로운 왕조의 정통성과 직접 연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에요.

흥미로운 것은 한나라의 덕이 처음부터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초기에는 수덕의 흔적도 보이고, 화덕과 관련된 상징도 함께 등장합니다.

이후 한무제 때에는 토덕이 강조되었고, 전한 말에 이르면 다시 한나라를 화덕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힘을 얻게 됩니다.

같은 한나라를 두고 수(水), 토(土), 화(火)가 모두 등장했던 셈이지요.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에게는 흥미로운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유방이 아직 황제가 되기 전 길을 가다가 커다란 흰 뱀을 만났다고 합니다. 유방은 칼을 뽑아 뱀을 두 동강 냈어요. 그 뒤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한 노파를 발견했는데, 노파가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내 아들은 백제(白帝)의 아들이었는데, 적제(赤帝)의 아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백색은 서방과 금(金)을 상징하고, 적색은 남방과 화(火)를 상징합니다. 후대에는 이 이야기가 유방의 한나라가 진나라를 대신해 천하를 차지할 운명을 암시하는 설화로 해석되었습니다.

유방 자신을 적제의 아들로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한나라 초기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집니다.

『사기』 「역서」에는 한고조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북치(北畤)가 나를 기다렸다가 세워졌도다.”

사마천은 이어서 유방이 스스로 수덕(水德)의 상서를 얻었다고 여겼다고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유방은 흑제(黑帝)에게 제사를 지내는 북치라는 제단을 세웠습니다. 흑색은 북방과 수를 상징하지요.

즉 한나라 초기에는 한나라를 수덕과 연결하는 모습도 나타났던 것입니다.

한편 유방은 적색 역시 중요하게 사용했습니다. 군사를 일으킬 때 붉은색을 사용했고, 자신을 적제의 아들과 연결하는 설화도 존재했어요.

그러다 보니 한나라 초기에는 한 왕조 안에서 수덕과 화덕의 상징이 함께 나타나는 다소 복잡한 모습이 만들어집니다.

한나라가 안정되면서 왕조의 정통성을 보다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특히 한무제에 이르면 진나라의 제도를 단순히 이어받은 왕조가 아니라, 새로운 천명을 받아 일어난 독립적인 왕조라는 점을 강조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를 토덕(土德)의 왕조로 보는 견해가 힘을 얻게 됩니다.

한무제는 토의 신인 후토(后土)에게 제사를 지냈고, 한나라의 역법인 태초력(太初曆)을 시행한 이후에는 황색을 중요하게 사용했어요.

토(土)를 상징하는 색이 바로 황색이기 때문이었지요.

숫자 역시 토와 연결된 5가 중요해졌습니다. 이런 변화는 왕조의 덕이라는 것이 단순한 철학적 논쟁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왕조의 색깔과 의례, 제도, 달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실적인 정치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한 말이 되면 다시 한번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번에는 한나라가 토덕이 아니라 화덕(火德)의 왕조라는 주장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변화가 훗날 황건적의 황색과 연결되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추연의 초기 오덕종시설에서는 왕조가 상극의 순서로 교체되었습니다.

화의 왕조가 있으면 그것을 극하는 수의 왕조가 등장하는 방식이지요.

그런데 전한 말 유향(劉向)과 유흠(劉歆) 부자가 등장하면서 이 설명이 크게 달라집니다.

특히 유흠은 왕조의 덕이 상극이 아니라 상생(相生)의 순서로 이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상생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극과는 왕조 교체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다르죠. 상극의 논리에서는 새로운 왕조가 이전 왕조를 ‘극하여’ 무너뜨립니다.

반면 상생에서는 앞선 왕조의 덕이 다음 왕조를 ‘생하여’ 넘겨주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정복과 파괴보다는 계승이라는 의미를 강조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유흠은 한나라 황실의 유씨를 전설상의 성왕 요(堯)의 후예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요임금을 화덕(火德)과 연결했습니다. 그 결과 한나라 역시 화덕을 계승한 왕조로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이론은 훗날 왕망에게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왕망은 기원후 9년 한나라를 대신해 신(新)나라를 세웠습니다.

만약 한나라가 화덕이라면 다음 덕은 무엇일까요?

화생토(火生土) 네, 불은 흙을 생합니다. 따라서 왕망의 신나라는 토덕(土德)의 왕조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왕망은 자신이 한나라를 폭력적으로 빼앗은 것이 아니라, 오덕의 순환에 따라 천명을 평화롭게 이어받았다고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여기서 아주 중요한 변화가 하나 생깁니다.

한나라 = 화덕(火德)

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립되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후한 말이 되면 이 화덕의 논리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용됩니다.

이번에는 황제가 아니라 반란군이 그 이론을 이용하게 된 거였죠.

기원후 184년. 후한은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황실의 권위는 약해졌고, 외척과 환관의 권력 다툼이 계속되었습니다.

지방에서는 토지의 대규모 겸병이 진행되면서 생활 기반을 잃은 농민들이 늘어났고, 자연재해와 전염병까지 겹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각이 이끄는 태평도(太平道)가 급속히 세력을 키웁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규모 봉기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삼국지』의 시작으로 익숙하게 알고 있는 황건적의 난입니다.

장각이 내세운 유명한 구호가 있습니다.

이 구호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황천(黃天)입니다. 누런 하늘이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왜 황색일까요?

앞에서 살펴본 한나라의 덕을 떠올려보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후한은 자신을 화덕(火德)의 왕조로 이해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행상생의 관계를 보면 화(火) → 토(土) 입니다.

화는 토를 생합니다. 그리고 토(土)를 상징하는 색깔이 바로 황색(黃色)입니다.

즉 화덕의 한나라가 다하면, 그다음에는 토덕의 새로운 시대가 등장한다는 논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장각이 말한 황천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황건적이 머리에 노란 두건을 두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황색은 단순한 패션이나 군사적 식별용 색깔만은 아니었습니다.

낡은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질서가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치적 상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장각의 구호를 다시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창천(蒼天)은 이미 죽었다.”

여기서 창(蒼)은 푸르거나 푸르스름한 색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 구호에서 더 중요한 것은 특정한 색 하나를 오행에 기계적으로 대응시키는 것보다, 기존의 하늘과 새로운 하늘을 대비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천명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천명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바로 다음 문장이 등장합니다.

“황천(黃天)이 마땅히 일어날 것이다.”

황건적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봉기는 단순한 생계형 반란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질서가 이미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거대한 정치적 선언이었죠.

재미있는 것은 오덕종시설이 여기에서 완전히 새로운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본래 오덕종시설은 왕조가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했던 사상이었습니다.

진시황은 이를 이용해 진나라의 수덕을 주장했습니다. 한나라 역시 자신의 덕을 정하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여러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후한 말이 되자 같은 논리가 이번에는 왕조를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갑니다.

왕권을 정당화하던 사상이 왕권을 부정하는 논리로 바뀐 것입니다.

장각의 구호에는 황천 외에도 눈여겨볼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이 문장입니다.

“세재갑자 천하대길(歲在甲子 天下大吉)”

“때는 갑자년이니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라는 뜻입니다. 황건적의 봉기가 일어난 기원후 184년은 실제로 갑자년(甲子年)이었습니다.

갑자(甲子)는 육십갑자의 첫 번째 조합입니다. 갑자에서 시작해 을축, 병인, 정묘를 거쳐 60개의 간지가 순환하고 다시 갑자로 돌아오지요. 따라서 갑자에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순환이 끝나고 새로운 순환이 시작된다는 이미지가 생길 수 있습니다.

황건적은 이러한 갑자년을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기 좋은 시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후한서』에는 황건적 세력이 관청의 문에 흰 흙으로 ‘갑자(甲子)’라는 글자를 써놓았다는 기록도 전합니다.

이들에게 갑자는 단순히 그해의 연도를 표시하는 두 글자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정치적 표어에 가까웠던 것이지요.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황건적은 왜 노란 두건을 썼을까요?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황건적의 난만 살펴봐서는 안 됩니다. 약 400~500년에 걸쳐 이어진 오덕종시설의 역사를 함께 봐야 합니다.

전국시대 추연은 왕조에도 목·화·토·금·수의 덕이 있으며, 그 덕의 순환에 따라 천하의 주인이 바뀐다고 설명했습니다.

진시황은 이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주나라가 화덕의 왕조였으니, 화를 극하는 수덕을 가진 진나라가 천하를 차지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검은색을 숭상하고, 6이라는 숫자를 국가 제도에 사용했습니다.

한나라가 들어선 뒤에는 자신들의 덕이 무엇인지를 두고 오랜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수덕이라는 설명도 있었고, 한무제 때에는 토덕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다 전한 말 유향과 유흠 이후에는 오덕이 상극이 아니라 상생의 순서로 이어진다는 설명이 힘을 얻었고, 한나라를 화덕의 왕조로 보는 인식이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수백 년 뒤, 후한 말 장각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창천은 이미 죽었다. 황천이 마땅히 일어날 것이다.”

화(火)가 다하면 토(土)가 이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토를 상징하는 색은 황색입니다.

황건적이 노란 두건을 썼던 것은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눈으로 보여주는 강렬한 상징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황건적의 난은 단순한 농민 반란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그 안에는 당시 사람들이 왕조와 역사, 천명과 자연의 질서를 이해했던 방식이 함께 담겨 있었으니까요.

더 재미있는 점은 하나의 사상이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진시황에게 오덕종시설은 새로운 왕조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논리였습니다. 한나라 역시 자신의 왕조가 천명을 받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오행을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후한 말이 되자 황건적은 바로 그 논리를 뒤집어 이렇게 말한 셈입니다.

“당신들의 덕은 이미 끝났다. 이제 새로운 하늘이 시작되어야 한다.”

왕조의 정통성을 지켜주던 오행론이 오히려 왕조를 뒤흔드는 사상적 무기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삼국지의 첫 장면으로 기억하는 노란 두건 뒤에는 이렇게 긴 음양오행 사상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황건적의 난을 살펴볼 때 단순히 “후한 말 농민들이 장각을 따라 반란을 일으켰다”고만 이해하는 것보다, 그들이 왜 자신들을 ‘황건’이라 불렀고 왜 ‘황천’을 이야기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훨씬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오행은 자연을 설명하는 이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계절과 방위만 설명한 것이 아니라 왕조의 흥망까지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왕조의 흥망을 설명하기 시작한 순간, 오행은 철학의 영역을 넘어 정치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진시황의 검은색과 황건적의 노란색은 바로 그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올해 초부터 중국사에 관심을 두었다가, 지금은 사주명리학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명리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고전들을 읽는 데 집중했다면, 요즘은 제가 읽었던 고전들이 어떤 시대적·사상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는지, 그리고 긴 명리학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를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 명리학과 관련된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사주명리의 첫걸음, 초코서당”
에디터 초명이었습니다.

초코서당 라이브클래스 사주명리학 VOD 수강
→ https://chocosd.livekla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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