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학의 역사(上)

안녕하세요.

사주명리의 첫걸음, 초코서당
에디터 초명입니다.

오늘은 사주명리학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그 역사를 한 번 정리해보려 합니다.

책 「역사의 역사」를 쓴 유시민 작가에 따르면, 경제학자는 경제학사를, 철학자는 철학사를 알아야 한다죠. 자신이 탐사하는 주제와 연구 결과가 그 분야에서 어떤 학술적 지위와 가치를 가지는지 더 잘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주명리학이 중국에서 태동한 학문이다 보니, 혹시라도 본 글을 읽기 전 중국의 역사에 대해 먼저 정리해보고 싶은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역사적으로 현대 명리학과 유사한 이론적 체계가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약 1천년 전 쯤 중국 오대십국 시대에 살았던 서자평에 의해 명리학 이론이 정리되면서부터입니다.

서자평이라는 이름, 혹시 한 번이라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일간을 중심으로 사주 원국을 살피는 지금의 관법을 자평명리학이라고 하는데요. 서자평은 그간 유행했던 띠 중심, 연지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일간을 중심으로 사주를 살핀 사람입니다.

서자평은 후에 자신의 관법을 정리하여 <명통부>라는 책을 남겼는데요. 이후 명리학은 송말 서승의 <연해자평>과 원말 유기의 <적천수>를 통해 점차 발전해나갑니다.

명나라 때는 만민영이 관의 지시를 받고 편찬한 <삼명통회>, 장남의 <명리정종>, 작자미상의 <난강망>이 나왔구요.

청나라 때에는 진소암의 <명리약언>, 심효첨의 <자평진전>, 임철초의 <적천수천미>가 등장하며 명리학의 이론적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참고로 <삼명통회>는 명리학의 백과사전으로 불리고 있구요. <난강망>은 조후론, <자평진전>은 격국론, <적천수천미>는 억부론의 교과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짧게 명리학사를 정리하면 이게 전부인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명리학은 최소 1천년 이상 체계적으로 발전을 거듭해온 학문이죠.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는 동양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태극과 팔괘의 효시가 되는 도상입니다. 하도에는 상생의 이치가, 낙서에는 상극의 이치가 담겨있다 보니, 시간이 지나 음양오행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죠.

동양에서는 하도와 낙서를 지혜의 근원으로 여겼습니다. 도서관(圖書館)’이라는 용어는 하도의 ‘도(圖)’와 낙서의 ‘서(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BC170만년부터 구석기가, BC8000년부터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신석기 시대에 황하 강 유역에서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황하강 부근에서 부계 씨족사회들이 나타났고, 삼황오제라는 지도자가 나옵니다. 삼황오제란 3명의 황(皇-임금)과 5명의 제(帝-역시 임금)를 부르는 말이죠. 삼황오제가 누구인지는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정확히 통일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마천은 <사기>를 쓸 때 삼황 시대를 과감하게 삭제하기도 했구요.

어찌됐건 삼황오제들이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중국을 다스렸는지에 대한 자료나 증거는 없어서 중국 역사에선 신화의 시대로 보고 있어요.

이미지 출처: 한국조경풍수 연구소 홈페이지(왼쪽은 하도, 오른쪽은 낙서)

삼황오제 중 복희가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 황하에서 갑자기 용마라는 신비한 동물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용마의 등에는 1부터 10까지를 나타내는 점들이 특정한 배열로 그려져 있었는데, 이를 따라 그린 걸 하도라고 한답니다.

복희씨는 이 하도를 보고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 팔괘(八卦)를 그렸다고 전해지고요.

BC2000년 경 등장한 하나라의 우왕이 치수사업을 하던 중, 낙수라는 강에서 커다란 거북이가 나타났다고 해요. 그 거북의 등껍질에는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나타내는 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걸 따라 그린 게 낙서라고 합니다.

하도와 낙서는 추후에 오행 상생상극도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도낙서로 보는 오행의 상생상극도> 이미지 출처: 한국조경풍수 연구소 홈페이지

기원전 1600년 상나라가 등장합니다. 중국의 문자인 한자가 바로 상나라에서 만들어진 갑골문자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상나라 왕은 자신이 신의 대리인(제사장)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홍수가 나거나,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나거나, 전염병이 돌면 점을 쳤지요.

거북이 배딱지나 소 어깨뼈를 불로 지지면 쩍 갈라지면 정인(貞人)이라는 점 해독 전문가가 그걸 보고 해석해서 점괘를 읽어줬습니다. 그게 갑골문자가 된 거죠.

한자의 기원이 되는 갑골문이 대량으로 발견되고 꾸준히 연구되면서, 간지의 역사도 점차 명확해집니다.

사주명리학의 간지는 아래처럼 천간 10개, 지지 12개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이러한 간지들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만민영은 <삼명통회>에서 간지는 천황씨가, 육십갑자는 황제의 스승인 대요가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서승은 <연해자평>에서 간지는 황제 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하죠.

<여씨춘추>, <오행대의>, <연해자평>, <삼명통회> 등의 여러 고대문헌들은 대요가 육십갑자를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황하를 중심으로 문명이 발달했다 말씀드렸는데요. 이때 등장한 부계 씨족사회의 지도자들이 복희, 여와, 신농, 황제, 전옥, 제곡, 제요(요임금), 제순(순임금)의 삼황오제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정확한 연대 측정이 어려운 신화의 시대로 여깁니다. 따라서 문헌을 통해서는, 육십갑자 간지가 황제시대 대요와 관련성이 있을 것이라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지가 지금처럼 어느 정도 체계화된 건 상나라 시대였습니다.

상나라에서는 지금 우리가 쓰는 간지들을 통해 왕의 이름을 나타내고, 날짜를 기록하는 신성한 기호체계로 활용했습니다. 간지는 또한 점복이나 제사와도 관련이 있었죠.

간지표가 기록된 상나라의 갑골 유물들이 발견됨에 따라, 상나라 때 이미 오늘날과 같은 행태와 순서로 육십갑자를 역일로 사용했음을 알게 되었는데요. 이는 오늘날의 육십갑자 차서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우리가 한 달을 셋으로 나누어 초순, 중순, 하순으로 부르잖아요? 상나라 때도 10일을 1순으로 삼고, 매순의 첫째 날은 갑일, 마지막 날은 계일로 하였습니다.

참고로 하나라 때는 인(寅)으로, 은나라 때는 축(丑)으로, 주나라 때는 자(子)를 세수로 삼았다고 합니다. 하은주 3대에 걸쳐 세수가 바뀐 건데요. 이후 진대에서는 해(亥)로써 정월을 삼았다가, 한무제 때에 이르러 태초력을 만든 후 인월로 세수를 삼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오는 거죠.

이번에는 역대 상나라 역대 황제들의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천을(天乙)→태정(太丁)→외병(外丙)→중임(中壬)→태갑(太甲)→옥정(沃丁)→태경(太庚)→소갑(小甲)→옹기(擁己)→태무(太戊)→중정(中丁)→외임(外壬)→하단갑(河亶甲)→조을(祖乙)→조신(祖辛)→옥갑(沃甲)→조정(祖丁)→남경(南庚)→양갑(陽甲)→반경(盤庚)→소신(小辛)→소을(小乙)→무정(武丁)→조경(祖庚)→조갑(祖甲)→늠신(廩辛)→경정(庚丁)→무을(武乙)→태정(太丁)→제을(帝乙)→제신(帝辛)

어떤가요? 황제의 이름에 간지가 쓰였죠? 이를 통해, 간지가 신성한 기호로 여겨졌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갑골문의 기록들을 모아 한데 정리한 갑골문의 백과사전 <갑골문합집>을 보면, 나라 사람들이 어떤 기록을 했는지를 살필 수 있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내용들이었죠.

이런 식으로 제사, 농업, 전쟁, 사냥, 질병, 천문, 기상 등에 대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이빨이 아픈데 조상님 때문인가요?(貞: 疾齒, 隹(唯) 父乙 害?)” 처럼, 무척 사소한 것들도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를 보아 당시 주나라 사람들이 많은 부분을 점에 의지했다걸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점을 치는 건 단순히 미래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의 뜻을 파악하여 국가의 안녕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통치행위 중 하나였습니다.

✅주역의 등장(주나라)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공자(孔子)가 주역(周易)을 너무나 열심히 읽다 보니,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고 하죠.

공자는 말년에 주역에 심취해, 논어에서도 주역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요. 그 주역이 바로 주나라의 역학입니다. (상나라의 역학은 아쉽게도 전해져내려오지 않습니다;;)

주역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점서에서 출발하여 철학서로 완성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고시대 주역은 점치는 책이었습니다.

주역은 점치는 책인 점서와 그 점서를 해석해 놓은 해설서로 나뉘는데요. 점서를 경문(經文), 해설서를 전문(傳文)이라 합니다.

경문은 주역의 핵심이 되는 원문으로, 점의 결과가 적혀있습니다. 64괘(卦)의 뜻을 풀이한 괘사(卦辭), 그리고 괘를 구성하는 6개의 효를 설명한 효사(爻辭)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괘는 어떤 ‘상황’이나 ‘국면’을 상징하고, 효는 그 괘가 뜻하는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 변화의 각 단계를 드러냅니다.

주역의 핵심 체계를 세운 사람은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의 아버지 문왕이었습니다. 강태공을 스승으로 모시고, 상나라를 멸망시킨 그 사람입니다.

문왕은 원래 상나라 사람이었는데, 당시 상나라는 정말 나라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었죠. 상나라의 마지막 왕이 엽기적 악마로 알려진 주왕이었는데요. 죄인들을 잔인한 형벌로 처형하고, 그걸 애인인 달기와 함께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알려진 사람입니다.

왕의 엽기적인 만행을 참다 못한 주변 부족 중, 문왕이 자신이 속한 주라는 부족의 수장으로서 여러 제후들을 이끌고 무력으로 상나라를 멸망시킵니다. 기원전 1046년의 일입니다.

왼쪽이 선천팔괘, 오른쪽이 후천팔괘/ 이미지출처: 한국조경풍수 연구소 홈페이지

문왕은 전설 속 복희씨가 만든 8개의 기본 괘를 서로 겹쳐서 64괘의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괘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설명하는 ‘괘사’를 씁니다.

문왕의 경문은 매우 간결하고 상징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주와 자연의 변화 양상, 섭리에 대한 통찰을 담은 책은 아니었습니다. 훨씬 현실적이고 정치적이며, 실용적인 목적을 띠고 있었죠.

경문에는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이기고, 어떻게 제사를 지내야 하늘의 뜻을 얻으며, 어떻게 상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에 대한 문왕의 고뇌가 담겨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점의 결과는 주로 길하다(吉), 흉하다(凶), 이롭다(利) 등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후에 문왕의 아들인 주공이 각 괘의 6개 선(효)마다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인 효사(爻辭)를 쓰고, 약 500년뒤 공자가 이 내용들을 깊이 연구하여 해설서인 십익(十翼)을 씁니다. 십익은 10개의 날개라는 뜻으로, 주역을 철학적으로 완성했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주역은 크게 문왕이 남긴 경문과 해석이 담긴 전문으로 나뉜다고 했는데요. 공자가 쓴 십익, 공자의 제자 자하가 쓴 자하역전(子夏易傳), 소동파가 쓴 동파역전(東坡易傳), 주희가 쓴 주역본의(周易本義) 등이 전문에 해당합니다.

자하는 공자의 도덕을 전수하기 위해, 소동파는 인생의 자유로운 철학적 통찰을 담기 위해 전문을 썼습니다. 주희 이전의 송나라 학자들은 주역을 순수하게 도덕 철학서로 접근했다 보니, 재미있게도 주희는 점서로서 주역을 연구한 후 성리학적 수양의 도구로 삼고자 했죠.

주역은 8괘의 기본 괘를 만든 복희, 그걸 64괘로 확장한 후 괘사를 단 문왕, 384효의 효사를 단 주공, 그리고 십익을 찬역한 공자, 이렇게 네 사람의 합작품으로 볼 수 있는데요.

대부분 주역을 이야기할 때는 주나라 문왕의 점서인 <경문>과 공자의 해설서 <십익> 두 가지를 말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상나라에서 주나라로의 교체는 단순한 국가 변화를 뜻하는 게 아니라, ‘야만의 시대’에서 ‘인문의 시대’로 넘어가는 거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점술 시스템의 혁명인 주역이 있었던 거죠.

상나라는 신의 뜻을 묻기 위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며 점을 쳤던 나라입니다. 점인을 동원한 거창한 의례와 대규모 제사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겠죠. 불길한 점괘가 나오면 신을 달래기 위해 수많은 노예나 포로를 희생시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상나라의 수도 은허가 유적으로 발굴될 때 순장의 흔적이 대량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나아가 노인과 아이, 여자까지 포함된 인신공양의 흔적을 통해 점복과 제사가 얼마나 잔인한 방식으로 운영되었는지도 알 수 있게 됐죠.

주나라 문왕의 업적은 갑골점의 결과를 ‘효(爻)’와 ‘괘(卦)’라는 체계로 분류하고 정리했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갑골점은 거북의 등껍질이 불길 속에서 갈라지며 만들어내는 균열을 해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추상적인 무늬를 해석하는 과정은 지극히 직관적이었고, 해석자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컸죠.

하지만 주나라 문왕 덕분에 더 이상 추상적인 무늬에 매달리지 않고, 64괘라는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도구를 통해 하늘의 뜻을 물을 수 있게 됐습니다.

더불어 상나라에서 성행하던 국가적 단위의 제사, 인신공양, 거창한 의례 등도 필요없게 되었죠.

상나라 시절의 점술이 다분히 직관적이고 신비주의적이었다면, 주나라에 이르러서는 훨씬 현대적이고 체계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인류 문명은 신화에서 논리로, 그리고 신비에서 과학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무실서하고 모호한 방식에서,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체계를 통해 세상을 읽어내려 한 발전 과정을 상나라와 주나라의 점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주명리학이 오늘날처럼 이렇게 체계적으로 발전하기까지, 몇 차례의 혁신적인 발상과 전환점이 있었는데요.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간지와 음양오행이 결합된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천간 중 갑목과 을목이 목 오행에, 병화와 정화가 화 오행에 배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갑목은 양목, 을목은 음목, 병화는 양화, 정화는 음화로 구분하고 있죠.

하지만 간지에는 애초에 음양오행과 관련된 개념이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음양론과 오행론이 상호발전하면서 간지와 결합한 이후, 사주명리학이 역학으로서 독자적인 체계를 가지게 된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입니다.

음양의 관념이 언제부터 생겨났는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여러 설이 분분합니다. 가장 유명한 주장은 음양 관념이 주역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분들은 <장자(莊子)>의 <천하(天下)>편에는 “易以道陰陽” (역이도음양) “『역경(주역)』은 음양(陰陽)을 말한(도리로서 밝힌) 것이다.” 라는 문장을 근거로 삼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문왕이 썼다고 전해지는 주역의 원문(경문)에는 ‘음양(陰陽)’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주역>에서는 ‘음양(陰陽)’이라는 용어가 직접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대신, ‘강(剛)’과 ‘유(柔)’라는 용어를 통해 이분법적 관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음양이 우주의 근본 원리로 공식화되어 설명되는 것은 공자의 해설서인 『계사전(繫辭傳)』부터입니다. 가장 유명한 구절인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 문장이 바로 그것이죠.

그렇다면 <장자>의 <천하>편에 등장하는 “역은 음양을 말한다”는 문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문장을 통해 우리는 장자가 살던 당시 주역을 음양의 원리로 풀이하는 ‘십익’의 관점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추후 공자가 주역의 해설서인 <십익>을 쓰면서, <주역>을 음양의 체계로 바라보려는 시각이 본격화됩니다. 이러한 시도 속에서 “역은 음양을 말한다” 같은 문장이 쓰이게 된 거죠. 공자뿐만 아니라 장자 등 여러 후대의 사상가들 역시, 문왕이 제시한 우주관에 음양론적 의미를 부여해왔습니다.

공자 학파는 <주역>을 점치는 책에서 우주, 인간, 윤리를 설명하는 철학서로 전환시켰습니다. 이후 한대와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치며 수 많은 사상가들이 주역을 각자의 시각으로 해석해 나갔죠.

이러한 축적 위에, 송대에 이르러서는 주자가 <주역본의>라는 책을 통해 주역을 성리학적 체계 속에 재정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역이 등장할 당시에,는 세상을 둘로 구분하는 방식인 음양이라는 철학 체계가 아직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정리하면, <음양론>의 뿌리가 주역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물론 <주역>은 동양철학의 정수이자 원류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주역>이 명리학의 바탕인 음양론과 오행론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음양론과 오행론이 각각 발전하고 상호 융합되면서 형성된 다원적 사유 체계가, 주역을 철학적으로 재해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동양철학사에서는 흔히, 고대의 신인이나 성인이 이미 우주와 자연의 모든 이치를 완전히 꿰뚫고 있었고, 후대의 인간들은 그들이 남긴 경전을 통해 그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식의 서사가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주역>을 태초의 지혜가 응축된 신화적 경전으로 이해하기 쉽겠죠. 하지만 <주역>을 동양사상의 모든 출발점으로 여기는 태도는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역>이 동양철학의 정수임은 맞지만, 동양사상의 모든 개념과 체계를 이미 포괄하고 있던 절대적 텍스트는 아닙니다.

주역의 기본 체계를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주역에서 말하는 ‘효(爻)’란 음과 양을 상징하는 선을 의미하는데요. 하나로 이어진 선 ― 은 양효이고, 가운데가 끊어진 선 — 은 음효입니다. 이 효가 세 개 모이면 하나의 ‘괘(卦)’가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기본 괘는 모두 여덟 가지로, 건괘, 태괘, 리괘, 진괘, 손괘, 감괘, 간괘, 곤괘라 부릅니다.

팔괘 중 건괘, 곤괘, 감괘, 리괘는 우리의 태극기의 문양이기도 하죠.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이 여덟 괘를 위와 아래로 두 개씩 포개어 배치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64괘(8X8)가 형성됩니다.

이미지출처: 대유학당 <손에 잡히는 경전 시리즈> 주역점 편

64괘는 우주와 인간 세상의 만물이 어떤 흐름 속에 있고, 변화가 왜 일어났으며, 어디로 향하는 지를 보여주는 변화의 기호입니다.

<십익> <계사전>에 이런 말이 있죠.

처음에 태극이 있었고, 이 태극이 2개로 나뉘고, 이 2개가 4개가 되고, 4개가 8개가 된다는 뜻입니다.

주역은 우주 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원리를 태극(1) → 음양(2) → 사상(4) → 팔괘(8)라는 단계적 구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64괘(64)로 이어지는 흐름은 2의 0승, 2의 1승, 2의 2승, 2의 3승을 거쳐 2의 6승으로 확장되는 정교한 수리적 체계와 연결되죠.

즉, 주역은 이분법적 시각에서 우주의 질서를 수직적 분화의 원리로 해석하고자 하는 학문입니다. 이에 비해 명리학은 오행의 상생, 상극이라는 관계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오행이 서로 생하고 극하며 순환하는 관계망을 통해, 우주의 변화 양상을 해석하고 있죠.

명리학은 천간과 지지가 상징하는 시공간의 기운들이, 계절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조응하는 지를 살펴 개인의 삶과 운명을 해석하는 학문입니다.

동양에서는 세계를 사유하는 두 가지 사유의 유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주역의 사유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음양오행의 사유 유형이었죠.

음양오행론은 본래 별도로 존재하던 음양이원론과 오행론이 상호 결합되며 하나의 이론적 체계로 정립된 사상입니다.

이 중 음양론은 춘추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음양론이 철학적인 하나의 틀로 자리잡게 된 건, 전국시대 초기의 도가학파 덕분입니다. 도가학파 경전인 노자에서는 만물이 발생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음양론은 우주를 구성하는 두 가지 근본적인 기운, 즉 음과 양의 상호작용으로 세계를 설명합니다.

음과 양의 기운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결합하는데요. 그 과정 속에서 우주 만물이 생성되고 변화한다고 보았습니다.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양이 태양이라면 음은 그늘이 되죠. 양은 굵고 밝으며 밖으로 드러나는 성질을, 음은 가늘고 어두우며 안으로 움푹 들어간 성질을 지닙니다.

이러한 음양의 개념은 인간이나 자연, 우주를 설명하는 데 폭넓게 사용됩니다. 우리 나라의 국기에 있는 태극 무늬 역시 이러한 음양 개념을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죠.

원시적인 오행설은 은나라와 상나라의 오방(五方) 관념으로 거슬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은나라 사람들은 목축업에 종사하며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닌 만큼, 방위의 관념이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중요하게 자리잡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은나라는 동, 서, 남, 북, 중앙, 오방의 천신과 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오(五)를 숭상하는 전통을 지켜왔습니다.

오행(五行)에 대한 언급은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書經) <홍범>편에 최초로 등장합니다. 목은 곱고 굳게 뻗어나가는 성질이 있고, 화는 위로 타오르는 성질이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지금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오행의 성질이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원래 오행은 다섯 가지 물질적 재료로 인식되었는데요. 점차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기운의 작용으로 이해되며 세상의 변화 원리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 시기 지구 반대편의 그리스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엠페도클레스라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가 이미 물, 불, 공기, 흙이라는 네 가지 원소로 우주 만물을 설명하는 사원소설을 제시했죠.

이는 기원전 5세기의 일로 중국에서 오행론의 개념이 싹트던 시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문명권에서, 세계를 몇 가지 기본 요소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춘추시대에 싹트기 시작한 오행설은 목, 화, 토, 금, 수로 상징화된 일종의 ‘오원소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를 ‘오원소설’이나 ‘오소설’이라 하지 않고, 굳이 ‘오행설’ 혹은 ‘오행론’이라 부른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행(行)’이라는 글자가 쓰인 건, 다섯가지 기운이 고정된 사물로 규정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작용하는 과정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특히 전국시대 제나라의 학자이자 음양가를 이끌던 추연에 의해, 오행은 상극의 논리적 틀을 갖추게 됩니다. 기존에 존재했던 음양론은 추연에 의해 오행론과 결합하여, 지금 우리가 아는 음양오행론이라는 하나의 철학으로 자리잡게 되죠.

사마천 사기(史記)에는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음양가가 으뜸이다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맥락상 사마천은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는 학문의 토대로서, 음양오행론을 가장 근본적인 원리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음양오행론은 단순한 물질의 변화 이론이 아니라, 세계의 변화, 흐름, 관계를 설명하는 역동적인 사상이었죠.

전국시대에 음양가를 이끌던 추연은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을 주장하며, 음양오행론을 왕조의 교체가 오행의 순환에 따라 일어난다는 정치 철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오덕종시설에 따르면, 오행의 순서는 “토→ 목→금→화→수→토”로 되어 있습니다. 목이 토를 극하고, 금이 목을 극하며, 화가 금을 극하고, 수가 화를 극한다는 오행의 순환과정이죠. 이 오행의 순환과정이 바로 오행상승설(五行相勝說)인데요.

추연이 말하는 오덕종시설은 바로 지금의 오행상극설에 다름 아니죠. 어떤 오행의 덕이 끝나면, 다른 오행의 덕이 시작된다는 이론은 왕조의 변화 과정을 오행의 상극관계로 설명하려는 정치철학적 시도였습니다.

사마천 사기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는 이런 글이 나옵니다.

추연이 창시한 오덕종시설은 후에 진나라가 망한 후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도 등장하죠. 추연의 사상은 이전 나라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는 제왕들에게 더 없이 좋은 철학적, 이론적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진나라는 주나라의 뒤를 이은 왕조였는데요. 주나라는 화 기운(火)을 상징했기 때문에, 진나라는 화를 극하는 수의 기운(水)을 타고났다고 선포했죠. 그래서 진나라는 물을 상징하는 검은색을 숭상하고, 수에 해당하는 해월(亥)을 한 해의 시작인 정월로 삼았다고 합니다.

진나라는 상나라 때부터 날짜를 세는데 사용되던 60간지 체계를 국가의 공식적인 시간 기록 단위로 확립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문자, 화폐, 도로 규격 뿐만 아니라, 전욱력이라는 역법을 마련하여 행정적 편의성을 도모했죠. (이 전욱력이 추후 한나라 무제 때 인월(寅)을 정월로 사용하는 태초력으로 개정됩니다.)

새로운 역법의 도입은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었습니다. 하늘의 질서(역법)가 인간의 질서로 투영된다는 사상이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는 우리가 아는 명리학의 이론들이 국가 통치 철학으로 확장된 역사적 사례이기도 합니다.

명리학의 고서인 삼명통회에 따르면, 만세력의 기준점이 되는 갑자년, 갑자월, 갑지일, 갑자시를 태초의 력원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현재는 간지상으로 갑자년 갑자월이 나올 수가 없게 됐습니다. 현재는 인월을 정월로 삼고 있으니까요. 즉, 갑자년에는 갑자월이 아니라, 병인월만 따라 붙을 수 있습니다.

하나라 때는 인(寅)으로, 은나라 때는 축(丑)으로, 주나라 때는 자(子)를 세수로 삼았다고 합니다. 하은주 3대에 걸쳐 세수가 바뀐 건데요. 이후 진대에서는 해(亥)로써 정월을 삼았다가, 한무제 때에 이르러 태초력을 만든 후 지금처럼 인월로 세수를 삼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주명리를 학문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들은 간지가 처음 적용된 ‘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수 많은 역법이 등장하고 신년의 기준이 계속 바뀌면서도 명리학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토대는 학문적 정합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리학에서 실제 최초의 력원이 언제인지도 중요하겠지만, 더 따지고 보면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명리학의 체계가 일관되게 작동해왔는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게 작용할 테니까요.

사주명리학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 첫 숨을 들이쉴 때 누구나 자연의 기운이 몸에 각인된다고 봅니다. 태어날 당시의 생년, 월, 일, 시의 기운을 우리가 아는 60갑자 간지로 변환시킨 게 사주죠. 사주명리학은 간지로 상징화된 자연의 기운들을 통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운명을 분석하는 학문입니다.

즉, 하늘과 사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전제가 투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서양의 점성학과도 닮아있습니다. 점성학이 별자리의 운행을 통해 인간의 운명을 파악하려 했다면, 동양의 명리학은 간지에 담긴 자연의 기운들을 통해 운명을 읽어내려 합니다. 점성학이 행성의 위치나 공간에 집중한다면, 명리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순환에 주목합니다.

어찌됐건, 둘 다 인간을 우주의 질서 속에 놓인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있는 것이죠.

동양에서 자연의 질서가 인간의 삶에 그대로 투영된다, 는 명리학적 사고의 토대가 갖추어지게 된 건 동중서의 천인감응론 덕분입니다.

한나라 시대에는 동중서가 유교를 국교화하면서, 음양오행론이 국가의 공식적인 통치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특히 그는 음양오행론을 점차 확장하어, 계절과 방위, 그리고 유교의 다섯 가지 핵심 덕목인 인·의·예·지·신과 결부시키죠.

나아가 동중서는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통해 하늘이 인간을 낳았기 때문에 인간은 하늘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늘에 사계절이 있듯 사람에게는 사지(팔다리)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 인간에게 오장이 생겨났다고 여겼죠.

천기가 한 사람의 명에 그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명리학적 사고가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중서는 사람의 형체, 수명, 혈기, 덕행, 호오, 희노, 수명 등이 모두 하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천문)과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인사)이 서로 감응한다는 동중서의 사상은, 자연의 변화양상을 통해 인간의 운명을 파악하려는 사주명리학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은 군주를 하늘의 아들이자 대리자로 신격화하고, 정치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무제 시기에 쓰여진 동중서의 책 춘추번로(春秋繁露)에는 “옛 사람들은 (가로로) 삼 획을 그은 뒤, 그 가운데를 연결시켜 왕(王)이라 했다”는 글이 나옵니다. 세 개의 가로 획은 하늘, 사람, 땅의 삼도를 의미하는데, 이 가운데 세로 획을 관통하는 왕이 삼도를 통일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본 것이죠.

춘추번로는 공자가 지은 역사서 <춘추>의 가르침을 동중서가 음양오행설과 결합하여 설명한 책이기도 한데요. 군주가 정치를 잘못하면 하늘이 가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내려 경고한다는 논리를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하늘의 질서가 인간의 삶, 특히 정치에 직접 투영된다는 명리학의 전제와 궤를 같이하고 있죠. 하늘이 자연재해를 통해 인간의 과오를 경고하고, 상서로운 길조를 통해 덕행을 찬양한다는 이론은 재이상서설(災異詳瑞說)로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천인감응론, 제이상서설 등은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명리학의 이론이 순수한 자연 철학의 영역을 넘어, 제왕적 통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며 국가의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핵심 논리로 작용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동중서는 사상은 정치적, 사회적 목적과 의도에 부합하는 인식체계였습니다. 특히 동중서의 음양론 사회적 구조를 체계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는데요.

예를 들어 동중서는 양은 위, 음은 아래의 구도로 바라본 만큼, 군주는 양/ 신하는 음, 부모는 양/ 자식은 음, 남편은 양/ 아내는 음, 선은 양/ 악은 음이라는 식으로 세계를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음양의 범주화는 당시 지배자 중심의 사회 질서와 권력 구조를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 군주에 대한 복종, 가부장적 가족 제도, 성별 위계를 윤리나 도덕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질서에 순응하는 행위로 정당화했으니까요.

양은 좋고, 음은 나쁘다는 인식, 즉 양존음비(陽尊陰卑), 귀양천음(貴陽賤陰), 양남음비(陽男陰卑)로 요약되는 사상은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되었습니다.

후한의 학자 왕충은 그의 책 논형(論衡)을 통해 동중서의 천인감응론, 재이상서설 등을 비판하며, 하늘은 신성하지 않음을 주장했습니다. 하늘은 사람과 감응할 수 있는 어떠한 체계도 갖고 있지 않으므로, 하늘을 초월적이거나 신비로운 존재로 상정하는 모든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시각에서 하늘은 일종의 의지를 지닌 주체가 아니라 인간과 소통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도덕 행위에 보상이나 처벌을 내리는 존재도 아니었죠.

나아가 사람이 죽으면 육체와 함께 정신도 소멸하니, 사람은 다시 환생하지도 못하고 귀신이 되어 떠돌아다니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후세계나 귀신, 미신, 환생 같은 신비적인 부분들을 강하게 배척했던 것이죠.

왕충에게 하늘은 도덕적 주체나 의사결정자가 아닌, 저절로 그러한 것이라는 의미의 ‘자연自然’ 그 자체였습니다.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인간과 감응하는 초월적 주체로 하늘을 바라본 동중서와 달리, 왕충은 하늘을 아무 의지도 없는 비인격적 자연 체계로 보았던 거죠.

왕충은 사람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명정론을 주장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각자 고유한 명을 부여받으며, 그 명의 길흉은 작위적 노력과는 상관없이 이미 결정되어 있기에 바꿀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게다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 길흉을 골격과 체형을 통해 읽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이는 사람의 생김새를 보고 운명을 논하려 관상학의 철학적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얼핏 이 같은 사상은 왕충이 천인감응론을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하면서도, 결국은 그러한 논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왕충은 군주의 흥망성쇠를 하늘의 뜻으로 여기는 것은 후대의 조작이며, 개인의 성공과 실패 역시 덕과 악이라는 도덕적 기준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그의 명정론은, 인간의 삶을 신비화하거나 도덕화하는 시도를 경계하기 위한 사상체계였습니다. 부귀와 빈천은 노력이나 도덕적 행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만큼, 과대 포장된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경계하려 했던 것이죠.

오늘은 중국의 상고시대부터 한나라 시대까지, 사주명리학의 발전사에 대해 정리해보았습니다.

오늘 공부한 내용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아래 연대표를 만들었는데요.

위 연대표는 네이버 블로그 <스텝, 하루한장>의 제이 선생님께서 만드신 ‘중국 역사 연대표’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사전에 제이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원본을 참고하여 내용을 일부 수정 보완했습니다. 귀한 자료를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제이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이어질 하(下)편에서는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현대 명리학의 역사까지를 다루어보려 합니다.

위진남북조 시대는 사주명리학의 발전사에 있어 뚜렷한 성과가 두드러진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명을 연·월·일·시 간지로 해석하려는 사고가 등장하고, 술수 문헌이 축적되면서 명리학이 본격적인 형성 단계에 접어든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당나라 이후,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를 거치며 명리학이 지금의 학문적 체계로 꽃 피우게 되는데요. 명리학의 발전사에 있어 이들 시기가 모두 화룡점정에 해당하는 만큼, 조금 더 신경써서 다음 시리즈를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초명 드림

<참고자료>
저서 『한국명리학의 역사적 연구』, 구중회, 2013, 국학자료원
저서 『명리학사』, 2017, 김기승, 나혁진, 다산글방
저서 『음양오행론의 역사와 원리』, 2017, 김기승, 이상천, 다산글방
저서 『명리학의 이해』, 2018, 루즈지, 사회평론아카데미
저서 『인물로 보는 중국철학사』, 2019, 김경호, 서영이 외 6명,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저서 『한국사주명리 연구』, 김만태, 2022, 민속원
저서 『현묘의 사주강의 입문편』, 현묘, 2024,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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