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上) – 하상주 시대부터 한나라까지

안녕하세요.

사주명리의 첫걸음, 초코서당
에디터 초명입니다.

오늘은 하상주 시대부터 한나라까지의 중국사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글 마지막에 중국사 연대표도 업로드하였습니다.)

책 「역사의 역사」를 쓴 유시민 작가에 따르면, 경제학자는 경제학사를, 철학자는 철학사를 알아야 한다죠. 자신이 탐사하는 주제와 연구 결과가 그 분야에서 어떤 학술적 지위와 가치를 가지는지 더 잘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리학을 연구하는 저로서는, 언젠가 명리학의 발전사에 관한 글을 상세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주명리학이란 게 중국에서 태동한 학문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명리학사를 정리하기 전, 일단은 중국의 역사를 먼저 알아야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오늘의 포스팅을 올립니다.

BC170만년부터 구석기가, BC8000년부터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중국의 역사는 삼황오제부터 시작됩니다. 삼황오제란 3명의 황(皇-임금)과 5명의 제(帝-역시 임금)를 부르는 말이죠. 삼황오제가 누구인지는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정확히 통일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마천은 <사기>를 쓸 때 삼황 시대를 과감하게 삭제하기도 했구요.

단, 중국인들은 모두 반고라는 창제신이 중국을 만들고, 삼황오제 중 하나인 여와란 여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모두 우리네 단군할아버지와 같은 신화 속 이야기입니다.

요순시대

신화의 시대는 계속됩니다. 혹시 요순시대라고 들어보셨을까요? 요임금과 순임금의 이름을 따서, 요순시대라고 하는데요. 중국의 태평시대를 이끌었다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중국을 다스렸는지에 대한 자료나 증거는 없어서 중국 역사에선 신화의 시대로 보고 있어요.

역사학자들은 당시 두 임금이 문명의 요람 중 하나인 황하 지역을 통치했다고 보고 있는데요. 문제는 이 황하라는 누런 강이 당시 시도 때도 없이 범람을 해서 기껏 지은 농사를 다 망쳐버렸다는 겁니다. 두 임금은 황하의 물을 다스리기 위한 치수(治水)에 올인해서 백성들이 편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함으로써 큰 인기를 얻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어요.

요순시대가 끝나고 우가 왕이 되어 하(夏)나라를 세웁니다. 이때부터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구분이 있는 계급사회가 들어서며 왕위세습제가 시작됩니다.

하나라의 마지막 왕이 걸왕이란 사람이었는데,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이웃 마을을 도적질하는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 걸왕이 밀희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연못을 술로 채우고, 나뭇가지에 고기를 걸어두고는 매번 파티를 즐기며 국가재산을 탕진합니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가 바로 주지육림(酒池肉林)입니다. 결국 상족의 부족장 탕이 보다못해 반란을 일으켜 걸왕을 죽이고, 상족 중심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드니 그 이름이 상(商)나라 입니다.

상나라

기원전 1600년, 부족장 탕은 상나라의 초대 국왕인 탕왕이 됩니다. 중국의 문자인 한자가 바로 상나라에서 만들어진 갑골문자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상나라 왕은 자신이 신의 대리인(제사장)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홍수가 나거나,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나거나, 전염병이 돌면 점을 쳤지요. 거북이 배딱지나 소 어깨뼈를 불로 지지면 쩍 갈라지면 정인(貞人)이라는 점 해독 전문가가 그걸 보고 해석해서 점괘를 읽어줬습니다. 그게 갑골문자가 된 거죠.

아, 그리고 이때는 왕권이 얼마나 셌는지, 엄청난 규모의 순장 유적지도 발굴 되었다네요.

원래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상나라를 은나라로만 알고 있었는데요. 나중에 은허 지역의 유굴이 발굴되면서, 은나라라고만 알고 있었던 상나라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 거죠. 상나라의 수도가 바로 은허였습니다.

<상나라 정벌>은 수도 은허의 유물들을 통해, 상나라가 어떠한 나라였는지를 서술한 책입니다. 상나라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은 엽기적 악마로 알려진 주왕이었습니다. 죄인들을 잔인한 형벌로 처형하고, 그걸 애인인 달기와 함께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알려져있습니다.

왕의 엽기적인 만행을 참다 못한 주변 부족 중 주라는 부족이 무력으로 상나라를 멸망시킵니다. 기원전 1046년의 일입니다.

망한 상나라의 유민들이 후에 이곳저곳 떠돌면서 장사로 연명했는데, 장사하는 사람을 상나라 사람이라 하여 상인(商人)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백이와 숙제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주족이 상나라를 멸망시킬 즈음, 나오는 인물들인데요. 주족의 왕인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려 하자, 백이와 숙제가 어찌 신하가 왕을 죽이려 하냐 말렸다 합니다. 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선 후,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가 주는 밥은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먹다 죽었다 합니다.

주나라

이후 들어선 주나라는 유교의 틀을 만든 나라입니다.

주나라를 세운 첫 번째 왕 무왕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자, 무왕의 어린 아들이 성왕으로 즉위합니다. 무왕의 동생이자 어린 왕의 삼촌인 주공이 권력을 탐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조카가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런 주공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분이 바로 우리가 아는 공자입니다. 주공의 이런 충심이야말로, 인간의 도리라 하여 유교를 만들게 되지요.

주나라는 중국식 봉건제도를 실시하여 나라의 기틀을 다진 덕분에 무려 790년 동안이나 나라를 잘 유지할 수 있었지만, 뒤에 가선 앞선 나라들과 비슷한 스토리를 반복하게 됩니다.

12대 왕인 유왕이 포사라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빠져, 정사를 그르치기 시작한 거죠.

포사라는 여인이 잘 웃질 않자 유왕은 이웃 오랑캐가 쳐들어왔다는 거짓 봉화를 울립니다. 달려온 제후들이 아무일도 없었다는 걸 알고 허탈해하는 걸 보고 포사가 웃기 시작하자 비슷한 짓을 반복했다 하네요. 그러다 실제 견융족이 쳐들어올 때 아무도 왕을 지키러 달려오지 않아, 결국 포사는 견융족의 노예로 끌려가고 유왕은 죽게 됐다 합니다.

주나라 왕실은 견융족을 피하기 위해 수도를 낙양으로(당시 낙읍) 옮깁니다. 오랑캐가 무서워 수도도 옮길 만큼 왕권이 약해지자 권력을 잡기 위한 제후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됩니다. 이른바 춘추전국시대의 시작이죠.

춘추전국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뉩니다. 주나라 왕실이 수도까지 옮기고 약한 모습을 보이자 제후들이 들고 일어났었죠. 하지만 주나라 왕실에 대한 형식적인 예의는 지켰다고 하는데요. 공자가 춘추라는 역사책에 기록한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403년까지의 이 시기를 춘추시대라고 합니다.

춘추시대에 춘추오패라고 불리던 강력한 5의 제후국들이 있었는데요. 기원전 403년에 이 중 하나인 진나라가(나중에 중국을 통일하는 진나라와는 다른 나라입니다) 집안 싸움을 하고 세 나라로 쪼개집니다. 이 시기가 전국시대(戰國時代)로, 한자를 보면 국가들이 전쟁에 돌입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는 기원전 221년까지 전쟁이 이어지는데, 유향이라는 역사학자가 <전국책>이라는 책에 이 시기에 관한 서술을 남깁니다. 그래서 전국시대가 된 거예요.

일단 춘추시대에 기억해야 할 인물과 사건을 알아보겠습니다.

관중과 포숙아

관중과 포숙의 이야기가 이때 등장합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둘은 친구였지만, 전국시대 때 각자 다른 주군을 모시고 있었어요. 그 까닭에 서로 라이벌의 관계에 놓였지만, 포숙이 자신의 주군인 소백에게 관중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고, 소백은 관중을 총리로 앉혀 결국 제나라를 춘추시대 최강국으로 만들었다 합니다.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주고 나를 살린 건 포숙이다”라는 관중의 말이 널리 알려져있죠.

와신상담, 오월동주, 토사구팽

와신상담(臥薪嘗膽), 오월동주(吳越同舟)란 말도 이때 탄생합니다. 와신은 장작나무에 눕는다는 뜻이고, 상담은 곰의 쓸개를 핥는다는 뜻입니다. 오월동주는 서로 적이었던 사람이 서로 도와야 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소설가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을 읽어보면, 이에 대한 역사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접할 수 있는데요. 간단히 요약해볼게요.

당시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라고 중국 남부 지역에도 여러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이 중 초나라의 평왕이 아들을 속이고, 자신의 며느리가 될 여인과 결혼을 하죠. 개막장 드라마도 이런 전개로 가진 않겠죠 ㅎㅎ

이를 알아챈 오사라는 충신이 평왕에게 정신차리라 말했는데, 아니꼬와진 평왕이 오사와 오사의 큰 아들 오상, 작은 아들 오자서를 모두 죽이자 마음 먹습니다. 아버지만 죽이면 아들들이 언젠가 복수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결국 오사와 오상은 죽었지만, 다행히 오자서는 옆 나라 오나라로 탈출했고, 오나라의 합려를 왕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그리고 왕에게 부탁을 하죠.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하게 해달라고요.

먼저 오자서는 군사전문가이자 손자병법을 쓴 손무를 스카우트합니다. 오나라군은 초나라를 정복하는데, 원수인 평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고 하네요. 오자서는 평왕의 시신을 꺼내 채찍으로 때려 시신을 부스러기로 만들어 복수합니다.

초나라를 격파한 오나라 왕 합려는 이웃국가 월나라를 치기로 합니다. 월나라 왕은 아버지가 죽은 후 왕 자리를 갓 물려받은 젊은 구천이었는데요. 무시하고 쳐들어갔는데, 월나라의 지략가 범려에게 당해 전투 중 부상을 입고 결국 죽습니다. 합려가 죽기 전에 아들에게 남긴 말이, 복수를 꼭 해달라는 거였죠.

합려가 죽은 후 합려의 아들 부차가 오나라의 왕이 됩니다. 오나라 왕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전까지 편하게 자지 않겠다며 장작 위에서 힘들게 잠을 잡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와신이 바로 땔감나무에 눕는다는 뜻이죠.

월나라 구천은 오나라 대군을 격파했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군사훈련을 게을리 했습니다. 오나라의 부차와 오자서가 군대를 이끌고 복수하기 위해 월나라로 쳐들어갔을 때, 월나라는 박살이 나지요. 그리고 월의 왕 구천은 오나라에 포로로 잡히고 맙니다.

오나라와 구차가 병으로 고생할 때, 구천이 부차의 환심을 사기 위해 변을 먹기까지 해요. 이에 감동한 부차는 구천과 범려를 풀어주어 월나라로 돌아가게 합니다. 자신에게 적대하는 마음이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죠.

구사일생으로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오나라에서 당한 수모를 잊지 않기 위해 매일 곰의 쓸개를 핥아먹습니다. 이른 바, 와신상담(臥薪嘗膽) 상담이지요. 상담은 쓸개를 맛본다는 뜻이거든요.

구천은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인 서시를 부차에게 첩자로 보내, 오나라의 부차와 오자서의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하고, 오나라는 스스로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월나라에 패망하고 말죠.

오자서가 주군인 부차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고, 적이자 친구인 월나라의 범려를 찾아가 “늦기 전에 떠날 때가 오면 떠나라”는 말을 전하는데요. 월나라가 오나라를 정복한 후, 범려는 공신으로 남지 않고 조용히 월나라를 떠납니다. 이때 떠나면서 남긴 말이 바로,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보신탕이 된다는 뜻의 토사구팽(兎死狗烹)입니다.

한나라의 한신도 범려의 말을 인용했던 거죠.

이제는 전국시대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전국시대 춘추오패 중 진(晉)나라라는 강대국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진나라는 나중에 중국을 통일하는 진시황의 진(秦)나라와는 다른 나라입니다. 위에서 이 진나라가 집안싸움이 일어나 3개의 독립국으로 분열됐다고 했는데요. 그때가 기원전 403년입니다. 이때부터 전국시대가 시작되죠.

왜냐하면 허수아비 왕실이었던 주나라에 형식적으로 신하국가로 예를 갖추던 여러 제후국들이 볼 때 진나라도 분열이 되어 각자 나라를 세우고, 주나라도 무너졌다 보니, 이젠 우리도 나서보자면서 서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거든요.

이 싸움은 진시황 영정이 진(秦)나라를 세워 중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이어집니다.

전국시대 중국 대륙엔 7개의 강대국이 있었으니, 이를 전국칠웅이라 부릅니다. 여기에는 진나라, 초나라, 제나라, 연나라,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가 속했죠. 이 강대국들은 주나라 왕실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국이었습니다.

이 시기부터 제자백가(諸子百家) 사상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제(諸)는 모든이라는 뜻이고, 자(子)는 스승님이란 뜻입니다. 백(百)은 수많은 이란 뜻이고, 가(家)는 사상가란 뜻입니다. 수 많은 스승과 사상가가 등장했다는 거죠. 매번 전쟁이 끊이질 않을 정도로 세상이 혼란하니 다양한 사상이 등장했던 거였습니다.

이중 가장 알려진 인물이 바로 인과 예, 즉 어짐과 예의를 강조한 공자입니다. 묵자는 평화를, 노자는 자연과의 합일을 중시했죠. (이때 음양가라는 학파가 음양오행 이론으로 세상의 변화를 설명했는데, 이게 명리학의 뿌리가 됐습니다. 요건 나중에 명리학사를 논할 때 자세히 설명드릴게요)

가장 힘이 약했던 진나라는 인, 예, 평화, 자연 모두 필요없고, 오로지 법이 최고다며 법치를 강조했습니다. 이게 중국 통일의 원동력이 된 거죠.

법을 지키면 확실한 보상을, 어기면 귀족, 왕족 가리지 않고 일반 평민처럼 신분을 가리지 않고 확실히 처벌하니 인기가 높아집니다. 도적과 거리의 폭력이 사라지고, 전투에 나가면 병사들이 열심히 싸우게 됐어요.

진나라의 중국 통일

마침내 진나라의 6대 왕 영정은 라이벌 6개국을 굴복시키고 그의 나이 39살에 중국을 통일합니다. 영정은 그냥 왕이라고 불리기 보다, 더 멋진 타이틀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중국 신화에 나오는 3명의 황, 5명의 제를 본따 황제(皇帝)라는 타이틀을 만들게 된 겁니다. 즉, 여기에 시작하다라는 뜻의 처음시(始)를 써서 진시황제라고 이름을 붙인 거죠.

진시황은 중국의 넓은 땅덩어리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군현제를 도입합니다. 진나라의 행정구역을 36개로 나누고, 그 안에 작은 행정단위인 현을 둡니다. 그리고 관리들이 권력을 갖지 못하게 임기제로 일정 기간을 두고 로테이션 시키죠. 그리고 문자, 화폐, 도로 등을 하나의 규격으로 통일합니다.

그리고 약 30만명을 강제로 동원하여 국방력을 높이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죠. 만리장성 같은 토목공사를 무리하게 강행하자, 공자, 맹자의 제자들 같은 유학자들이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고 진시황에게 간언합니다. 진시황은 이를 고깝게 여겨 유학자들 460명을 생매장시키고, 진나라의 법치 사상을 뺀 다른 사상들을 모두 불태웁니다.

이게 그 유명한 분서갱유입니다. 한 마디로 미친 짓이었죠.

진시황은 오래 살려고 몸에 좋다는 건 다 챙겨먹었습니다. 서복이란 도사가 불로초를 찾아오겠다고 하자 큰 배 10척과 각종 금은보화, 그리고 어린 남녀 각각 500명을 주기도 해요.

자기를 등쳐먹으려는 사람들은 늘어나지, 강제로 통일해놓은 6개국은 반란을 일으키려 하지, 암살 시도는 계속 일어나지, 진시황은 몸과 마음이 지쳐갑니다. 그러다 지방 순시 중 겨우 나이 50에 가마에서 갑자기 죽어버려요.

죽기 직전, 환관 조고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유언대로라면 진시황의 첫째 아들 부소를 황제 자리에 앉혀야 하지만, 조고는 이를 조작하여 자기가 좌지우지하기 쉬운 진시황의 둘째 아들 호해를 황제 자리에 앉힙니다. 이제 조고의 시대가 열린거죠.

이후 진승과 오광이란 농민이 중국 역사상 최초로 농민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고요. 강제 통일됐던 6개국 출신들이 또 반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조고는 이런 사실을 황제가 모르게 하는 한편, 자기의 쿠데타 동지이자 라이벌인 승상 이사를 죽입니다. 이걸 안 황제는 조고를 벌하려 하지만, 조고는 먼저 선수를 치고 황제를 죽여버리죠.

이후 진나라의 3대 황제로 자영을 앉히는데요. 자영은 진시황의 큰 아들 부소의 아들이었습니다. 자영은 조고의 장난으로 자기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걸 알고 황제가 된 후 조고를 죽입니다. 하지만 전국적인 규모의 반란이 계속 일어나자 BC206년, 마침내 중국 대륙을 통일했던 진나라도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전한시대(前漢) – 초한지(BC202-8)

항우와 유방, 사면초가, 패왕별희, 장기

초(楚)나라 항우와 한(漢)나라 유방의 싸움을 다룬 소설이 바로 초한지입니다. 여기에서는 그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 합니다.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하기 전 최대 라이벌인 초나라와 일전을 벌일 때, 백전노장 왕전을 보내 초나라군을 박살냈습니다. 진나라의 왕전에게 패배해 초나라가 멸망하게 된 때, 초나라의 장수 중 항연이란 사람이 패배의 억울함에 목숨을 끊죠.

진시황 치하에서, 망한 옛 나라의 귀족이었던 항연 장군의 아들 항량은 조카 항우와 함께 숨죽이며 살았습니다. 진나라 말, 진승과 오광의 농민 반란이 일어나자 항량과 항우는 혁명의 대열에 동참합니다. 옛 초나라 장군의 아들과 손자가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문에, 항우의 혁명군은 금새 10만 대군으로 수가 불어났다고 하네요.

유방은 당시 진시황릉의 토목공사에 끌려갔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기한에 맞춰 공사현장에 도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공사현장에 늦는 사람들은 사형에 처하던 터라, 난을 일으킨 진승이나 오광처럼 봉기를 일으켜야겠다 마음먹죠.

많은 사람들이 군사로 합류했지만 유방이 평민 출신이었다 보니, 혁명군은 3천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대세인 항우 밑으로 들어가 합류하기로 하죠.

이 둘은 스타일이 많이 달랐습니다. 항우는 고집센 독불장군이었고, 유방은 성격이 유하고 자신을 굽힐 줄 알아 인복이 많았어요. 게다가 항우는 삼촌인 항량이 진나라와 전투 중 죽은 이후, 진나라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죄를 따지지 않고 모조리 학살을 하는 바람에 민심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유방과 함양이란 지역의 통치권을 두고 다툴 때, 좀 더 힘이 있던 항우는 유방을 길이 험하고 산맥으로 막혀있는 촉(蜀)나라(지금의 사천성 지방)에 가서 한왕(漢王)으로 지내게 하죠. 유방은 거기에서 힘을 키운 후, 항우가 다른 제나라를 정벌하러 갈 때 중원이 빈 틈을 타 흔한 말로 항우의 빈집을 텁니다.

항우가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초나라의 어린 왕을 죽여 민심을 잃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항우를 비난하며 유방 밑으로 규합하죠. 항우는 기원전 202년, 해하(지금의 안휘성 영벽)란 곳에서 포위를 당합니다. 유방의 한나라군이 본인의 나라인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졌다고 깨닫죠. 고향 생각이 난 초나라 병사들이 진영을 이탈하여 한나라 쪽으로 넘어갔거든요.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사면초가(四面楚歌)입니다.

항우는 자기의 애첩인 우희와 함께 목숨을 끊습니다. 항우가 사랑하는 여인 우희와 이별하는 장면을 그린 스토리가 바로 장국영 주연의 영화 패왕별희입니다. 항우는 자신이 패권을 쥔 왕이라 하여, 스스로를 패왕이라 불렀거든요.

유방은 기원전 202년 한나라의 이름으로 중국을 통일합니다.

참고로 장기란 게임이 바로 초한지의 전쟁을 두고 중국사람들이 만든 게임입니다.

한나라가 건국은 됐지만, 계속 전쟁이 이어지던 까닭에 중국 민초들의 삶은 매우 피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방은 흉노족(북쪽의 유목 민족)의 침입도 신경써야 했죠. 유방이 30만 대군을 끌고 흉노를 치러 갔는데, 흉노의 40만 대군에게 중국 산시성 대동 부근의 백등산이란 곳에서 포위를 당해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겨우 탈출한 후, 흉노에게 조공을 바치며 형님 국가로 모시고 살죠. 중국인들(한족)은 이때를 백등산의 치욕이라 부릅니다.

중국 최고의 악녀 여씨부인

유방은 여자 문제로도 골치를 겪었는데요. 여씨부인이란 중국의 악녀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나요? 유방이 왕위 세습 문제를 정리 못하고 일찍 죽어버리자, 본 부인이었던 여씨부인이 후궁이었던 척부인과 아들을 제치고, 자신의 아들을 태자에 앉힙니다. 바로 한나라 2대 황제 혜제죠.

여씨부인은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척부인을 인간돼지로 만들어버립니다. 손발을 다 자르고,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게 만든후 돼지 우리에 던져넣은 거죠. 이걸 본 2대 황제 혜제가 이걸 보고 미쳐버린 후 정사를 내팽개치게 됩니다.

여씨부인은 자기 친정 식구들을 나라의 요직에 앉히고, 실질적인 여황제로 15년간 중국을 지배합니다. 기원전 180년, 여씨 부인이 죽자 유방의 친인척들이 유방의 아들 중 하나인 유항을 3대 황제에 앉힙니다.

한무제, 실크로드, 동중서, 사마천

한나라는 이후 꾸준히 이어지다가 한무제라는 황제가 등장해 기원전 119년 흉노를 박살내버립니다. 흉노를 치기 위해 몽골초원을 지나 지금의 시베리아까지 쳐들어갔다 하네요. 이때부터 한나라는 흉노와의 전쟁에서 알게 된 지리정보를 활용해, 서쪽 세계와 교역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실크로드로 알려진 중국과 중동, 그리고 유럽 간의 교역로의 시작이었죠.

한무제는 남쪽으로 베트남을 침공해 한나라 땅으로 만들었고, 북쪽으로 침공해 기원전 108년 우리의 고조선을 멸망시킵니다. 고조선을 멸망시킨 중국 황제가 바로 한나라 무제입니다.

한무제 때 우리가 알아야 할 두 인물 중 하나가 동중서입니다. 정국을 안정시키려 하던 무제에게 동중서라는 학자가 유학을 국교화해야 한다고 건의하죠. 이를 받아들여 한무제가 확립한 체제는 직업이나 성별, 신분에 따른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었습니다. 인문정신도 중요하지만, 당시 유교는 권력질서를 정당화하는 지배이념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다른 인물은 바로 사마천입니다. 한나라 장수 이릉이 흉노와 전투 중 항복을 하고 돌아오는데, 모두가 이릉을 벌해야 한다 주장할 때 사마천만 그를 변호합니다. 황제가 열받아 처형하려 하자, 사마천은 살기 위해 생식기를 제거하는 궁형을 받겠다 하죠.

그리고 살아남아 삼황오제부터 한나라 무제까지 무려 3천년의 역사를 14년에 걸쳐 정리한 사기를 완성해냅니다. 위의 기록들 모두 역시 사마천의 사기에서 인용한 것들이죠.

신나라 건국 – 한나라의 멸망

한무제에 의해 그럭저럭 한나라는 잘 유지되어갔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48년, 11대 황제인 원제 때부터 나라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 명인 왕소군은, 원제의 3천 궁녀 중 하나였어요. 한나라는 유방 때부터 흉노에게 매년 조공을 바쳤는데요. 원제 때에는 흉노족의 추장 호한야가 조공으로 여인을 바치라고 했다네요. 이때 흉노족에 끌려가게 된 여인이 바로 왕소군입니다.

원제가 자연사하자 그 뒤를 그의 아들 성제가 잇습니다. 그런데 성제는 매일 주색에 빠져 살고, 원제의 아내이자 성제의 어머니인 황후 왕씨가 나라를 통치했어요. 같은 왕씨 친인척을 왕궁에 불렀는데, 그때 들어간 왕씨 중에 황후 왕씨의 조카 왕망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국방부 장관의 위치에 오르는데, 한나라 성제가 죽고, 그 다음 황제 애제 역시 7년 만에 죽은 혼란 가운데 왕망이 실권을 알뜰하게 챙깁니다.

평제라는 9살 짜리 어린아이가 황제 자리에 오르자마자, 왕망이 평제를 독살해서 죽입니다. 황제까지 죽인 왕망을 모두 두려워했겠죠. 왕망은 스스로를 가황제, 즉 임시황제로 임명한 후 나중에는 진짜 황제 자리에 오릅니다.

그리고 AC 8년 나라 이름을 신(新)나라라고 바꾸죠. 이게 한나라의 공식적인 멸망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저 멀리 팔레스타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왕망에 의해 망한 지금까지의 한나라를 앞의 한나라라고 해서 전한이라 부르고, 이후 나중에 부활하는 한나라를 후한이라 부릅니다.

스스로를 이상적 도덕적 지도자라고 착각했던 왕망은 모든 토지와 생산품을 몰수해서 백성들의 원망을 얻고, 흉노와 전쟁을 벌여 나라를 휘청이게 만듭니다. 우리 고구려에도 시비를 걸었습데요. 오랑캐가 고(高)구려라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하(下)구려라고 불렀답니다. 그리고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 시비를 걸고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여기저기 농민 반란이 일어났을 때, 왕망은 기도발이 좋다는 군사 3천명을 뽑아 크게 울며 통곡하고 기도하게 했다 하네요. 당연히 전투에 패배하게 되고, 서기 23년 부하의 칼에 목숨을 잃습니다.

신나라는 고작 15년만에 역사 속에서 다시 사라집니다.

✅후한시대(後漢) – 삼국지(25-220)

왕망의 신나라를 무너트린 인물은 유수입니다. 3천명의 병사로 42만에 달하는 왕망의 군대를 한 번에 무찌른 사람이죠. (물론 중국인들 특유의 허풍이겠죠?) 유수는 서기 25년 한나라의 황제가 됨을 선언합니다. 네 유수가 바로 후한의 광무제입니다.

후한의 황실은 황제의 외가 친인척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이전까지의 황실이 전부 외척에 의해 무너졌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환관들의 권력이 점차 커지기 시작합니다. 삼국지 초반에 등장하는 10명의 환관인 십상시가 이런 흐름 속에서 탄생하게 되는 거죠.

환관들이 백성들을 착취하자, 결국 피폐해진 삶을 이기지 못해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이 도적 떼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서기 184년, 그 중 장각이라는 인물이 태평도라는 사이비 종교 단체를 만들어 황건적의 난을 일으키죠.

이 황건적을 진압하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로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 조조입니다. 물론 삼국지는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 삼국지연의는 황건적의 난이 터졌던 후한 시대부터 1천년이 흐른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기까지 나관중이라는 소설가가 쓴 소설이지요.

아무튼 환관들이 워낙 판을 치자, 한나라의 대장군 하진이란 사람이 대장 환관을 본보기로 죽이는데요. 이에 환관들이 하진을 계략으로 죽이자, 열받은 하진의 부하들이 환관들을 모조리 죽이게 됩니다.

사실 하진이 살아있을 때 좀 도와달라 요청했던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동탁입니다. 동탁은 왕실의 권력싸움을 옆에서 구경만 하다가 군대를 이끌고 수도를 향하던 중 길바닥에서 두려움에 떨던 어린 황제 소제를 발견합니다. 그리곤 황제를 구한 영웅이 되지요. 이 꼬마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입니다.

이후부터는 우리가 아는 삼국지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관도대전, 적벽대전, 위촉오 삼국

어린 황제를 데리고 있던 동탁이 자신의 위세를 뽑내자, 보다못한 지방 귀족들은 반동탁 연합군을 만듭니다. 여기에 조조가 가담했죠. 동탁은 그냥 당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낙양이라는 후한의 수도를 불태운 후 서쪽 장안으로 수도를 옮깁니다.

동탁은 이후 여포라는 호위 무사와 사이가 안 좋아지면서 내부반란으로 무너집니다. 물론, 우리는 여기에 초선이 개입한 걸로 알고 있지만 이게 실제 정사와는 다르다고 하네요. 동탁은 죽었지만, 반연합군은 각자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칼은 뽑았으니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심산이었죠.

동탁이 장안으로 수도를 옮길 때, 어린 황제인 헌제가 도망을 치는데 성공합니다. 추격대가 황제를 좇을 때 조조가 직접 가서 황제를 구출해내죠. 그리고 조조는 가기의 거점 도시인 허창으로 황제를 모시고 갑니다. 중국 북부 지역을 당시 원소가 세력화하고 있었는데, 서기 200년 조조는 관도라는 곳에서 원소와 격돌합니다. 이게 정사 삼국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관도대전입니다.

조조가 중국 북부를 장악하고 있을 때 중국 남부에서는 손권과 유비가 힘을 키우고 있었죠. 조조가 원소를 꺾고 북부를 통일한 후 8년이 지난 서기 208년, 우한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양자강에서 조조 VS 손권, 유비 연합군이 크게 맞붙습니다. 이 강 위에서의 해상전투가 바로 적벽대전입니다.

조조가 대패한 후 3명의 실력자들이 숨고르기에 들어가며, 중국은 자연스럽게 삼등분됩니다. 조조가 서기 220년에 66살로 죽고 그의 아들 조비가 후한의 실권자가 되는데요. 조비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를 협박해 황제 자리를 뺏은 후, 나라 이름을 후한에서 위로 바꿉니다. 조비의 위나라, 손권의 오나라, 유비의 촉나라로 중국이 나뉘게 된 거죠. 이게 바로 삼국지가 삼국(三國)지인 이유입니다.

진나라의 등장

삼국지의 최종 승자는 유비도 조조도 아닌 바로 사마의입니다. 조비의 수석 어드바이저였던 사마의는 유비의 촉나라가 위나라를 침략할 때마다 모두 막아냅니다. 제갈량이 천재적인 전략가라고 나오는데, 사실 제갈량은 다섯 번의 북벌에 실패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객사합닌다. 소설 말고 실제 정사에서 최종 승자는 제갈량이 아닌 사마의였죠.

조비가 죽은 후에는 조예가 황제가 됐는데요. 이때 사마의가 권력에 욕심을 내고, 위나라의 실권을 잡습니다. 황제는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말지요.

사마의가 72살로 죽은 후, 위나라의 실권을 쥔 그의 아들 사마소가 서기 263년 유비가 세운 촉나라를 정벌합니다. 이때 유비는 죽고 유비 아들 유선이 촉나라 황제로 있었는데 위나라 군대가 쳐들어온다고 하자 싸우지도 않고 항복해버리죠. 너무나 무능력한 황제였던 겁니다.

위나라 최고 권력자 사마소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사마염이 실권자가 되는데요. 사마염은 조씨 황제를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본인이 황제에 등극한 후, 위나라를 아예 진(晉)나라로 바꿔버립니다. 그 사마염이 서기 280년 중국 남부를 다스리던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중국 대륙을 다시 한 번 통일하게 되는 거죠.

✅글을 마무리하며(연대표 첨부*)

오늘은 하은주 시대부터 한나라 시대까지의 중국사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오늘 공부한 내용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아래 연대표를 만들었는데요.

위 연대표는 네이버 블로그 <스텝, 하루한장>의 제이 선생님께서 만드신 ‘중국 역사 연대표’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사전에 제이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원본을 참고하여 내용을 일부 수정 보완했음을 밝힙니다. 귀한 자료를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제이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아래에 원안의 링크도 함께 올립니다.

다음에 이어질 하(下) 편에서는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청나라까지의 역사를 다루어보려 합니다.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초명 드림

<참고자료>

저서 『썬킴의 거침없는 중국사』, 2023, 썬킴 저, 지식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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