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주명리의 첫걸음, 초코서당
에디터 초명입니다.

이전 시리즈에서 상고시대 부터 한나라까지 사주명리학의 역사에 대해 정리했는데요.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위진남북조 부터 청나라 시대까지의 명리학사에 대해 정리해보려 합니다.

한나라 때 음양오행은 방위, 색상, 맛, 인의예지신 오덕 등과 결합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이자, 국가의 통치이데올로기 역할을 하였습니다. 후한 시대의 사상가 왕충은 그의 저서 <논형>을 통해, 음양오행설을 너무 신비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지요.

음양과 오행, 오행과 간지는 춘추전국시대에 결합되기 시작되어 한나라 때 어느 정도 완성되었는데요.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쳐, 수나라 때는 음양오행과 간지가 완벽하게 결합되기 시작합니다.

수나라의 개국공신인 소길이 저술한 <오행대의>에는 천간과 지지 각 글자의 음양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지지 속에 천간이 들어있다는 지장간 개념도 <오행대의>에서 처음 나타나다 보니, 명리학의 역사에 있어 오행대의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상당히 높죠.

참고로 <오행대의>에는 왕상휴수사, 12운성의 개념도 함께 정리되어 있습니다.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인도, 이슬람 등 서양의 점성술이 중국에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유명한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시기이기도 하죠. 원래 중국의 술수학들은 태어난 날짜나 절기를 중요하게 여겼는데요. 인도 점성술의 영향으로 태어난 시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가 점점 강화되었습니다.

한편 인도 점성술에는 황도 12궁이라는 체계가 존재했는데, 이것이 동아시아의 12지지와 대응되면서 합, 충, 형, 신살 등 명리학의 여러 이론이 발전하는 데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인도와 이슬람을 거쳐 들어온 서양 점성술의 여러 이론들은 후에 동양의 철학, 사상과 결합하며 칠정사요, 자미두수 같은 동양만의 독자적인 점성술이 만들어지는데 널리 기여하게 되죠.

명리학의 역사에서 서양의 점성술은 이후 간지 체계와 결합되며, 당나라 시기 승려들에 의해 달마일장금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후 달마일장금의 체계가 민간으로 확산되고 더욱 정교화되면서, 대중들에게 친숙한 운명학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당나라 때부터 사람의 운명을 해석하기 위한 사주명리학의 학문적 체계가 구체적으로 갖추어지기 시작했는데요. 이 체계에 따라 크게 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고법(古法)과 일간을 중심으로 하는 신법(新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현대명리학이 바로 일간을 중심으로 사주를 살피는 신법, 즉 자평명리학입니다.

고법은 삼명학 또는 녹명학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고법 명리학은 국가와 조상의 덕, 가문의 배경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죠.

고법의 오주(五柱) 체계

[참고1] 논문: 명리학 고법과 신법의 논리구조 비교연구 ❘ 나혁진, 정경화
[참고2] 네이버 블로그 “다시 배우는 사주명리” 사주명리 고전 편 이미지

말 그대로 조상과 가문을 운명의 뿌리로 보았는데요. 연주의 천간을 녹(祿), 지지를 명(命), 연주의 납음오행을 신(身)이라 합니다. 이 녹, 명, 신 세 가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상생하는지를 보는 것이 고법 명리학, 즉 삼명학의 핵심이었습니다.

녹(관록)을 상징하는 연간을 통해 부귀와 벼슬을, 재를 상징하는 연지를 통해 빈부와 운의 움직임을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재능이나 능력은 연간과 연지의 대응하는 납음을 통해 살폈습니다.

그리고 고법명리학에서는 태원(胎元)이라 하여, 아이를 임신한 달을 중요하게 여겨습니다. 일반적으로 10개월의 임신 기간으로 미루어 계산하는 만큼, 출생한 달의 이전인 아홉 번째 달을 태원으로 산출했죠. 후에 신법명리학에서는 태원을 제외하고, 연주, 월주, 일주, 시주를 사주여덟글자만 두고 한 사람의 운명을 파악하게 됩니다.

고법 명리학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이 <이어중명서>와 <낙록자부>, <옥조정진경>입니다. 고법에서는 신살을 두드러지게 활용했다 보니, 특히 <이허중명서> 같은 책에는 각종 길신과 흉살에 대한 많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어중명서는 전설적 인물인 귀곡자의 <귀곡자유문서>에 이허중이 주석을 단 책입니다. 낙록자가 쓴 <낙록자부>에 서자평이 주석을 단 책이 <낙록자삼명소식부주>입니다.

명리학 서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 중 하나로 꼽히는 <옥조정진경>은 동진시대 곽박이 저술하고, 장옹이 주석을 단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다만, <이허중명서>와 <낙록자부주>의 원문들은 물론, <옥조정진경> 또한 언제 저술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명확히 남아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선 <이허중명서>가 정말 이허중이 쓴 책이 맞는지, 등장한 시기가 언제인지 등에 대한 이견이 존재합니다.

우선, 명리학의 주요 고전으로 남아있는 <이허중명서>의 명리학적 특징을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1. 납음오행 중시
  2. 세태월일시 오주 체계
  3. 십이운성(수토동궁의 관점)
  4. 음생양사, 음양순역의 관점
  5. 부귀를 의미하는 재관 중시
  6. 각종 신살의 활용

<낙록자부주>와 <낙록자삼명소식부주>는 송나라 때 나온 책인데요. 전국시대의 낙록자가 쓴 <낙록자부>에 송대의 인물들인 석담영, 왕정광, 이동 세 사람이 주석을 단 책이 <낙록자부주>입니다. 여기에는 서술된 대운을 산출하는 원리는 현대 자평학에서도 그대로 채용하고 있죠.

사주명리학사에서 최초로 일간을 중심으로 사주를 보기 시작한 서자평이 <낙록자부>에 주석을 단 책이 바로 <낙록자삼명소식부주>입니다. 아래 이 책의 명리학적 특징을 보실까요?

  1. 왕상휴수사에 따른 십이운성론
  2. 운이 바뀌는 시기에 대한 운한론
  3. 신살론
  4. 돈월법, 둔시법

<옥조정진경>은 장옹이 곽박에게 가탁(假託)하여 출판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어, 저자가 누군지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서자평이 주석을 단 <옥조신응진경>의 명리학적 특징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사주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함
  2. 오행의 강약 판단과 중화 중시
  3. 부귀빈천의 직업 판단
  4. 길흉화복, 질병, 품성의 판단
  5. 육친의 판단

<옥조신응경>은 사람의 출생연월일시를 사주의 간지로 표기하고, 사주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한 최초의 책입니다.

납음은 “소리(音)를 받아들이다(納)”라는 뜻입니다. 고대 중국의 음악 이론인 12율려와 오행 사상을 결합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납음오행은 천간과 지지를 두 글자씩 짝 지어, 그 조합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오행을 뽑아내는 방식입니다. 천간과 지지의 기운이 만났을 때 울려 퍼지는 소리(?)를 오행으로 변환한 것이죠.

우리가 서양의 도(C), 레(D), 미(E), 파(F), 솔(G), 라(A), 시(B)도라는 칠음계를 쓰는 것처럼, 과거 동양에서는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는 오음을 썼습니다.

사주의 60갑자가 각각 어떤 납음오행에 해당하는지를 외우기 쉽게 노래로 만든 걸 육십화갑자납음가(六十花甲子納音歌)라고 합니다.

甲子乙丑 海中金 (갑자을축 해중금) 丙寅丁卯 爐中火 (병인정묘 노중화) 戊辰己巳 大林木 (무진기사 대림목) 庚午辛未 路傍土 (경오신미 노방토) 壬申癸酉 劍鋒金 (임신계유 검봉금) …

이런 식으로 60갑자 끝까지 이어지는 노래가 있습니다.

납음오행으로 어떻게 사주를 풀이하는지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이허중명서>나 <삼명통회>를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로 송나라 때 집필 된 <삼명통회>에는 고법 명리학(삼명학)과 신법 명리학(자평학)의 이론이 모두 집대성되어 있습니다.

달마일장금은 손바닥을 펴고 손가락 마디를 출생 연월일시의 순서대로 차례로 짚어나가며 사주를 보는 방법입니다. 간단하면서도 적중률이 제법 높아 당나라 때 스님들과 일반인들 사이에서 제법 큰 인기를 끌었다고 알려져있는데요.

사실 당나라 때 쓰여진 여러 책들과 송나라 역사를 다룬 <예문지>에도 그 기록이 없어, 당사주가 당나라 때 만들어졌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정리하면 중국에서의 기록이 전무한 터라, 학계에서는 당사주가 띠를 중심으로 한 신살, 십이지지 등의 여러 이론들이 불교의 포교 과정에서 한국적 색채를 입으며 조선시대에 널리 대중화된 이론으로 보고 있죠.

당나라 때 유행한 사주이론인 달마일장금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선종의 시대를 연 달마대사가 창안한 이론입니다. 그가 포교를 위해서 당시 인도점성술과 명리학의 간지를 결합하여, 민중들의 운명을 봐주기 위해 개발한 술법이 달마일장금인 것이죠.

이 학설이 당나라 때에 이르러 승려이자 천문학자였던 일행선사에 의해 문서의 형태로 전해져 내려오게 된 거구요.

신라말기 도선국사가 당나라에 건너가 일행선사에게 풍수지리와 비보설이라는 예언집을 전수받았다고 하는데요. 많은 학자들은 이때 한국에도 달마일장금이 불가를 통해 전래되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달마일장금의 경우 연주만 따진다고 알려져있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달마일장금이 태어난 띠에서부 터 생월, 생일, 생시의 흐름을 따라간 후, 마지막 생시에 해당되는 지지로 풀이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연주에서부터 시주까지 이어지는 흐름의 첫 시작이 연주다 보니, 무엇보다 근묘화실론 적인 입장에서 연주를 사람의 운명의 기본 배경으로 보는 시각이 깊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납음오행과 달마일장금으로 사주 보는 방법이 궁금한 분은,
블로그에 올린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당사주와 납음오행으로 사주 보는 방법
https://chocosd.com/7046/

송나라 때 사주명리학사에 한 획을 그은 한 명의 천재가 등장합니다. 바로 서자평이란 사람이었죠. 서거이라 불리기도 했던 서자평은 기존에 납음오행을 중시하고, 연주를 중심으로 사주를 살피던 관법을 버리고, 지금처럼 일간을 중심으로 사주를 살피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금법 또는 신법이라 불리는 자평명리학이 탄생하게 된 거죠. 현대명리학의 시조를 서자평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자평명리학은 기존 사람의 운명을 살피던 패러다임이 연주, 신살, 납음오행을 중심에서 일간으로 변화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시발점이었죠.

많은 사람들은 흔히 한 명의 천재가 어느 날 갑자기 진리를 깨닫고 사주명리학의 체계를 진보시켰다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존의 신살이나 납음오행 중심의 관법은 인간의 삶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암기와 단순 대응 관계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런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조금씩 싹트는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자평의 자평명리학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자평은 수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오행의 생극제화, 사주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바탕으로 인간의 귀천, 수명의 장단 등을 논리적, 합리적으로 추론하고자 노력했던 사람이었죠.

<낙록자삼명소식부주>는 서자평의 저서로 전해지는 중요한 고서입니다. 서자평이 낙록자가 썼다고 알려진 <낙록자부>에 주석을 단 책입니다. (낙록자가 실제 낙록자 삼명소식부를 썼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습니다)

<낙록자삼명소식부주>는 일간을 중심으로 사주를 살핀다는 점 이외에도, 연, 월, 일, 시를 근묘화실론적 관점에서 조부모, 부모, 나, 자식의 기운으로 바라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당시의 사주명리학이 유가에서 강조하는 종법제도의 틀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당시 송나라는 성리학을 국가의 정치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사주명리학은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 질서와 명분이 강조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등에 업고 송나라에서 큰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근묘화실론은 더욱 발전하여 현재 연주를 1-20세, 월주를 21-40세, 일주는 41-60세, 시주를 61-80세로 해석하는 관점으로 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서자평이 세운 일간 중심의 관법은 이후 석담영, 악가보, 왕정광, 이정 등의 학자들에 의해 더욱 정교해집니다. 이들은 방대한 주석 작업을 통해 파편화된 이론을 체계화했는데요. 이를 통해 사주명리학은 단순한 술수를 넘어, 당시 사대부들과 평민 모두에게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잡게 됩니다.

서자평의 이론을 계승하여 십성, 육친론을 체계화하고 발전시킨 남송시대 대표적인 명리학자가 서승입니다. 서승의 또 다른 이름은 서대승인데요. 이름이 비슷하긴 하지만, 서자평과는 엄연히 다른 인물이죠.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연해자평>이라는 책이 바로 서승의 저술입니다. 서승이 이 시기에 저술한 책은 원래 <연해>와 <연원> 그리고 <오행전도론>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명나라 대에 와서 당금지라는 사람이 서승이 쓴 <연해>와 <연원> 합하여 편찬한 책이 <연해자평>입니다.

<연해자평>은 백과사전형식으로, 당시 산재하던 여러 사주이론들을 집대성한 책입니다. 다만 서자평의 이론을 계승하여 연주가 아니라 일주를 중심으로 사주를 해석한다는 게 중요한 특징이죠. 또한 납음오행을 비판하는 한편, 근묘화실론의 논리를 정리하고, 18가지의 격국과 함께 당대 유명인들의 사주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오행전도론>은 예컨대 목이 화를 생하지만(목생화), 나무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불이 꺼지는 것처럼 강약의 상황에 따라 생이나 극의 흐름에서 비껴나 역설적으로 오행의 균형이 완전히 깨지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수가 목을 생하지만, 물이 너무 많으면 나무가 썩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불이 너무 강하면 나무가 타버리거나, 나무나 단단하면 오히려 쇠가 부러지는 것도 오행전도론의 사례입니다.

특히 불이 강하면 물이 말라버린다거나(화염수작-火炎水灼) 흙이 많으면 나무가 부러진다(토중목절-土重木折)는 논리를 업신여긴다는 뜻에서 오행의 상모(相侮)관계라 일컫기도 합니다.

서승의 이런 통찰은 생극제화의 단편적 해석을 넘어, 명리학이 기운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학문으로 발전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명리학은 당송시대를 거치며 신살과 납음오행, 연주 중심의 고법에서 벗어나, 일주 중심의 신법으로 도약했습니다. <낙록자부>, <이허중명서>, <옥조정진경>, 명통부> 등 주춧돌이 되는 여러 고전들이 쏟아져 나오며, 자평명리의 체계가 공고히 다져지기 시작했죠.

그러나 자평명리학은 유목 민족인 원나라가 중원을 장악하며 잠시 정체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닦는 자는 흥한다’라는 징기스칸의 말처럼, 끊임없이 목초지를 찾아 이동해야 했던 몽골족에게 중요한 것은 나침반이나 다름없던 ‘밤 하늘의 별’이었습니다.

나아가 몽골족들은 별빛이 흔들림 없이 또렷하게 빛나는지, 또는 습도가 높아 별의 주변이 뿌옇게 보이는지를 보며 다음날 날씨를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농경민들은 한 곳에 정착하며 농사를 짓다 보니, 별의 움직임보다 계절의 변화와 시간을 더 중시하게 됐죠.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생존과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농경사회의 시간관과 종법질서, 성리학적 세계관 속에서 발전을 이어가던 명리학은, 유목민족이 지배 세력인 원나라가 들어서며, 학문으로서의 발전 동력을 잃고 겨우 명맥만 이어가는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이는 몇 가지 역사적 배경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성리학을 채택했던 송나라와 달리, 원나라는 성리학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거든요. 종법제도와 결합해 근묘화실론이나 육친론 등 여러 이론으로 확장되던 사주명리학의 체계는 원나라 때부터 발전 토양을 잃게 된 것이죠.

여기에는 사주명리학을 발전시켰던 사대부 계층이, 원나라의 차별 정책에 크게 위축되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지식인 계층이 약화되면서 명리학은 철학적 깊이나 학문적 정교함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민간 점술로 격하됐거든요.

실제로 명리학과 관련된 주요 고전들이 원나라 시기에 거의 저술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러한 상황을 방증합니다.

원나라는 명리학 대신, 티베드 불교의 복서에 더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한 당시 원나라의 영토가 서역까지 뻗어 있다 보니,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이슬람의 천문관측 도구와 계산법을 대거 들여오게 되었죠.

이는 훗날 칠성사요 같은 동양의 점성술이 학문적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의 개국 공신 중 한 명이, 주원장의 오른팔인 유백온(호는 유기)이었습니다. 한나라 유방의 책사인 장량, 삼국시대 촉나라 유비의 책사 제갈량과 더불어 중국의 3대 책사로 꼽히는 인물이죠.

유백온은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고, 여러 술수에도 능했다 하는데요. 유백온이 쓴 명리학의 고서가 바로 <적천수>입니다. 적천수는 매우 간결하고 함축적인 시구 형태로 저술되어 있는데요.

후에 이 <적천수>에 여러 학자들이 각각 주석을 달아 <적천수천미>, <적천수집요>, <적천수보주> 등의 책으로 다시 발간하며 명리학의 정수로 자리잡게 되죠.

원대에는 명리학이 정체기였지만, 명대에 이르러 자평명리학의 체계가 정교해지며 <적천수>이외에도 <연해자평>, <삼명통회>, <명리정종>, <난강망> 같은 중요한 책들이 꾸준히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연해자평>은 당금지가, 송대 서승이 자평명리학에 대한 이론을 직접 정리하기 위해 쓴 <연해>와 <연원> 두 권을 합쳐서 간행한 책입니다.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난 명나라는 한족의 전통성을 회복하려 했습니다. 또한 성리학적 질서를 강조했다 보니, 당, 송시대에 발전해왔던 사주명리학을 정통 학문으로 인정하여 국가에서 사주명리학과 관련된 방대한 지식과 이론들을 모두 모아 편찬하라고 장려하게 되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책이 명나라 만력제 때 만민영이 쓴 삼명통회입니다. 바야흐로 명나라 시기는 사주명리학의 국가적 공인기에 해당된다 할 수 있죠. 민간에서도 다시 대중화되기 시작한 사주명리학은 단순한 점술을 넘어, 우주의 이치, 자연의 질서를 담은 학문으로 격상되며 폭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건륭제가 당시 중국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서적을 수집하여 총 3,400여 종, 7만 9천여 권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으로 정리했으니 이를 사고전서라고 합니다. 지식을 네 개의 창고(사고)인 경(經), 사(史), 자(子), 집(集)으로 나누어 정리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게 된 거죠. 참고로 경은 유교경전을, 사는 역사서를, 자는 제자백가나 술수류 등 각종 사상들을, 집은 시문학을 담고 있습니다.

삼명통회는 고법인 신살과 납음오행, 그리고 신법인 자평법이 모두 소개되어 있는 명리학의 백과사전입니다. 사고전서에 수록되어 전해지게 됐는데요. 다만 삼명통회만큼 중요한, 당시 민간에도 널리 유포되었던 <연해자평>은 어째서인지 사고전서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고 하네요.

명리학의 역사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정통파 선언문에 해당하는 고전이 바로 명나라 말기의 학자 장남이 쓴 명리정종(命理正宗)입니다. 장남의 호인 신봉을 따서, 명리정종은 <신봉통고> 또는 <신봉벽류>라 불리기도 하였는데요.

책의 제목 중 통고(通考)는 통할 때까지 고찰했다는 의미를, 벽류(僻謬)는 오류를 허물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사주명리학이 대중화되면서 온갖 잡다한 신살과 근거 없는 이론들이 판을 쳤습니다. 이를 지켜볼 수 없던 장남은 명리학의 근본을 바르게 세우겠다(正宗)며 <명리정종>을 집필합니다. 책에 자신의 이름을 내 걸고, 당시 민간에 퍼져있던 명리학의 여러 오류들을 철저한 임상을 통해 바로잡고자 했죠.

명리정종은 연해자평의 학설을 대체로 수용하면서도 자평학의 이론적인 부분을 일부 보완하고 있는데요. 대운의 천간과 지지는 서로를 공격할 수 없다는 이론인 동정설, 천간과 지지를 극의 관점에서 바라본 개두설, 명조의 병과 약을 찾는 방법인 병약설 등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또한 자평학의 서적 가운데 최초로, 실제 사주를 놓고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입니다.

명나라 때는 명리학 뿐만 아니라, 의학도 크게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1596년에는 중국의 모든 약초와 처방을 규격화한 이시진의 <본초강목>이, 1602년에는 명나라 의학의 교과서인 왕긍당의 <육과증치준승>이 저술됐죠.

조선에서는 1613년 허준이 명나라의 의학 지식을 참고하여 조선에 맞는 의학백과사전인 <동의보감>을 완성합니다. 우리나라의 산천에서 나는 약재를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에 맞게 분류하여 우리만의 의학 체계를 만들어냈죠.

명리학 뿐만 아니라, 점성학, 풍수, 의술에도 정통해있던 장남은 의학적 관점에서 사주를 바라보며 병약설이라는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어냅니다. 사주명식을 병들게 하는 기운과,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약이 되는 기운을 정확히 파악하자는 것이 병약설의 핵심이었습니다.

장남의 병약설은 의술에도 능한 그의 임상과 가치관이 사주 연구에도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명리정종에는 재미있게도, 서양점성학이 중국으로 유입되어 발전한 동양의 점성학인 칠성사여(오성학)에 대한 내용이 매우 풍부하게 실려있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당시 명대의 학자들이 점성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 병약설은 청대에 이르러, 서락오가 용신을 정하는 다섯 가지 방법론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게 됩니다. 장남의 병약설은 명주의 건강을 살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이론 중 하나입니다.

사주명리학에는 조후, 억부, 격국, 병약 등 여러 관법들이 있는데요.

이중 조후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명대 작자미상의 <난강망>입니다. <난강망>에 인용된 명주들이 명나라 시대 유명 인사들이라, 명대에 지어진 책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조후론은 사주의 한난조습, 사주가 뜨거운지 차가운지, 건조한지 습한지 등을 살피는 관법입니다. 사주의 계절적 환경이 조화로운지를 살피는 명리학의 핵심 관법 중 하나죠.

명대에 쓰여진 <난강망>은 청나라 초기 한 천문학자 직함을 가진 관리의 손에 들어가 <조화원약>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고, 청나라 말기 여춘태가 원문을 임으로 줄이고 늘여서 <궁통보감>이라는 이름으로 재 출간합니다.

이를 1937년 중화민국의 서락오가 재출판하여 널리 유포시킨 후 <난강망>, <궁통보감>이 명리학자들 사이에서 조후론의 교과서로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청나라 때는 현대명리학의 주요 체계들이 정교해지며 명리학의 전성기를 이룹니다.

<자평진전>의 탄생의 주춧돌 역할을 했던 진소암의 <명리약언>, 격국론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심효첨의 <자평진전>, 억부론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임철초의 <적천수천미> 등 그야말로 주옥같은 고서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거든요.

명리약언(진소암), 자평진전(심효첨)

<명리약언>은 청초 진지린이 지은 책입니다. 진지린은 호인 진소암으로 널리 알려져있죠. 명리약언은 오래전 저술된 책으로 한동안 잊혀졌다가 약 300년 후인 1933년 위천리가 교정을 보아 <정선명리약언>을 출간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명리약언>은 격국론, 용신론 등 여러 명리학의 이론들을 억부론적 관점으로 집대성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명리학의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명대의 <삼명통회>는 여러 이론들이 나열만 되었을 뿐 하나의 정리된 관점이 부족했는데, 자평학을 보완, 발전시킨 <명리정종> 이후 명리학은 명리약언에 의해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됩니다.

<명리약언>은 이론을 소개한 책이 아니라, 억부론적 관점에서 저자가 자신의 견해를 일관되게 진술한 최초의 명리학 책이었거든요.

진소암은 복잡한 격국론을 비판하며 이를 간소화하고 합리화하려 노력했습니다. 나아가 기존의 신살과 납음이론을 비판했는데요. 십이운성 이론도 비판하긴 했지만 완전히 부정하진 않았습니다.

<명리약언>의 간명총법에는 “사주를 보는 것은 생극억부에 불과할 따름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사주원국 여덟 글자를 살필 때 기운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위한 억부가 가장 중요하다는 관점이었죠.

<명리약언>은 억부론적 관점에서 용신론을 체계화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었습니다. 후에 억부론의 교과서라 불리는 임철초의 <적천수천미>가 탄생하는 흐름 속에서 중요한 전거로 활용되었습니다.

<자평진전>은 청대 건륭4년(1739년)에 진사를 지냈던 심역번이 지은 책입니다. 그의 자가 효첨이다 보니, 심효첨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있죠.

<자평진전>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팔자의 용신은 오로지 월령에서 찾는다(팔자용신 전구월령-八字用神 專求月令)”와 “팔자의 격국은 오로지 월령을 사주와 배합한 것이다(팔자격국 전이월령배사주-專以月令配四柱) 입니다.

심효첨은 월령이 사주의 근간인 만큼, 월령의 지장간에서 투출된 천간이 사주 전체를 지배한다는 격국론의 논리적 체계를 완성한 사람이죠. 월령의 지장간에서 투출한 천간으로 격을 정하고, 그 격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을 상신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원국은 물론, 운에서 달라지는 상신의 유입여부에 따라 격과 운의 성패를 논했습니다. 또한 월지에서 길신인 식신, 재성, 정관, 인성이 투출하면 순용하고, 반대로 흉신인 겁재, 상관, 편관이 투출하면 역용해야 한다는 관점을 전개했죠.

그 이전의 고서인 <연해자평>과 <삼명통회>는 편인을 효신이라 하여 흉신으로 보았지만, <자평진전>에서는 재미있게도 편인을 정인과 묶어 길신으로 보고 있습니다. 양인과 건록월겁을 모두 흉신으로 보고 있는 것도 독특한 관점입니다.

<자평진전>은 중화민국의 명리학자 서락오가 증주한 <자평진전평주>를 통해 세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서락오는 용신법 중에 억부법을 특히 중요하게 여겼던 학자였는데요. 격국론이 중심인 심효첨의 <자평진전> 원문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상이한 관점이 섞이다 보니, 독자들이 혼란을 겪게 됐죠. 이런 이유로 최근 국내에서는 서락오의 증주를 배제하고, 원본인 심효첨의 <자평진전> 전39편만이 재정리하여 출간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격국론이 탄생할 수 있게 된 시대적 배경

고법 명리학에서 활용되던 삼명법에서는 천간과 지지가 납음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결합되어 해석이 제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신살의 비중이 높았던 당시에는, 정해진 규칙에 따른 단순 대응을 통해 사주 해석이 길흉판단에만 머무는 경향이 있었죠.

각 주를 하나의 단위로 묶어 해석했던 고법과 달리, 일간을 사주의 기준으로 놓았던 서자평의 자평명리학은 이런 한계와 문제 인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체계였습니다.

송나라 이후 부터는 이전에 쓰였던 납음오행과 신살 대신, 일간 중심의 관법이 점차 자리 잡으며, 명리학은 폭발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됩니다.

명대에는 <명리정종>에서 동정설이나 개두설 등이 제시되기도 하였는데요. 간단히 말해 동정설은 대운의 천간과 지지는 서로를 공격할 수 없다는 이론이고, 개두설은 천간과 지지를 극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론입니다.

고법에서는 납음오행으로 인해 천간과 지지가 하나로 묶였지만, 신법에서 천간과 지지는 서로 상호작용하면서도 독립된 간지로 해석되기 시작했죠.

일간 중심 관법의 단점은 일간이 다른 간지들과 맺는 관계의 경우의 수를 모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간지 사이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살피는 방식은 해석의 정교함을 높여 주었지만, 사주의 구조와 의미를 한 번에 파악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격국론은 여러 사주의 유형을 일정한 틀로 정리하려는 시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이론입니다.

명리학에서 조합 가능한 사주의 수는 총 51만 8,400가지인데요. 이론적으로 51만 8,400가지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다 보니, 모든 명식을 개별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일정한 패턴과 구조로 분류하여 이해하려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발전하게 된 거죠.

격국론은 월지를 중심으로 한 관법입니다. 여기에는 사주명리학이 월지를 중심으로 했던 절기학이었다는 점, 사회적으로 성리학적 사유가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 등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명대의 <난강망>은 사주의 한난조습을 중시하는 조후론적 관점에서 저술된 책인데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간주한 만큼, 일간과 계절을 뜻하는 월지의 유기적인 조화를 중시했습니다. 특히 농경 사회의 질서 속에서 일간과 월지의 관계를 해석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은 격국론적 인식과 같은 흐름에 놓여있습니다.

억부론의 교과서, 적천수천미(임철초)

<적천수천미>의 원저인 <적천수>는 송나라 경도가 지인 책입니다. 이후 명의 개국공신인 유백온이 곳곳에 흩어져있던 명리이론을 집성하고 <적천수>에 주를 달았는데, 후대에 이르러 청대의 임철초가 방대한 해석과 512개의 사주 명식을 억부론적 관점에서 증주한 책이 <적천수천미>입니다.

임철초의 증주본은 초본으로만 보관되고 전해지다가 1933년 중화민국의 명리학자 원수산이 <적천수천미>를 교정하여 간행했죠. 그 뒤에 서락오가 초기에 <적천수천미>에서 원주를 빼고 자신의 이론을 담은 <적천수징의>를, 후에는 임철초의 원의를 살리는데 주력한 <적천수보주>를 다시 출간합니다.

앞서 청대 진소암은 <적천수집요>를 쓰기도 했는데요. 이렇듯 <적천수>를 원본으로 한 보론이나 주석서들이 여러 권이라는 점을 통해, <적천수>가 사주명리학의 역사에 있어 얼마나 가치있는 책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임철초의 견해 중 ‘너무 과다한 기운은 극하기 보다 생조하는 것을 더 반긴다거나(왕자희설旺者喜洩)’ 왕한 자가 쇠한 자를 충하면 쇠한 자는 뿌리째 뽑혀 나가고, 쇠한 자가 왕한 자를 충하면 왕한 자는 더욱 발하게 된다(왕자충쇠쇠자발旺者沖衰衰者拔, 쇠신충왕왕신발衰神沖旺旺神發)’는 관점은 억부론의 기존 논의를 한 단계 확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한 전왕사주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종재격, 종살격, 종아격 이외, 종왕격, 종강격, 종기격, 종세격을 추가하여 명리학사에 있어 새롭고 독창적인 종격이론의 체계를 완성했죠.

기존의 육친론과 달리 아버지를 재성이 아니라 인성이라 보거나, 남명에서도 자녀를 관성이 아니라 식상으로 해석한 것 역시 임철초만의 독창적인 관점입니다. 참고로 임철초 역시 신살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서락오, 위천리, 원수산은 근대 중화민국을 대표하는 세 명의 명리학자입니다. 특히 서로를 선의의 경쟁자료 여긴 서락오와 원수산은 서로 비슷한 저술을 남기며 명리학의 이론과 역사를 정리한 업적이 큽니다.

근대 명리학의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바로 서락오가 쓴 <자평수언>입니다.

서락오는 용신법 중에 억부법을 특히 중요하게 여겼던 명리학자였습니다. 그가 1938년 용신을 정하는 다섯 가지 원칙을 확립한 책이 자평수언이죠.

격국론과 용신론을 함께 지칭하는 격용론적 관점에서, 격국론의 상신은 억부론에서 말하는 용신과 개념적으로 유사하지만 둘은 엄연히 달랐습니다.

명리약언이 격국용신론을 간단하게 요약, 정리한 이후, 심효첨의 <자평진전>에 이르러 격국론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용신을 보좌하는 상신의 개념을 통해, 길신과 흉신, 순용과 격용에 따른 격의 성패를 논했으니까요.

하지만 <궁통보감>에서 조후론을, <적천수천미>에서 억부론을 체계화시킨 것처럼, 명리학의 이론은 점점 세분화되며 용신과 격국이 분리됩니다. 그리고 서락오의 <자평수언>에 이르러 용신을 정하는 원칙은 억부, 조후, 통관, 전왕, 병약으로 체계화됐죠.

체용론의 관점에서 격국이론이 원국(體)을 중요시한다면, 용신론은 활용의 관점에서 운이나 개인의 노력(用)을 조금 더 중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락오는 <궁통보감>, <조화원약평주>, <적천수징의>, <자평진전평주>, <적천수보주>, <고금명인명감>등을 저술하였습니다.

서락오의 업적은 자평수언을 통해 용신을 정하는 원칙을 확립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주명리학의 여러 필독서인 <적천수>, <자평진전>, <궁통보감>을 평주하여 널리 알렸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원수산의 <명리탐원>은 명리학의 역사와 기본적인 이론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원수산은 중국 역사의 유명한 인물들의 사주를 역사서에 근거하여 수록한 <명보>를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원수산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그 이전까지 명리학사에 알려지지 않았던 명리학 최고의 고전인 <적천수천미>를 발굴, 발행했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이후, 사주명리학의 이론들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완전히 사장됩니다.

그때 중국에서 피난해 온 명리학자들이 바로 대만의 원수산, 홍콩의 위천리였습니다. 이들의 연구 덕분에 명리학은 겨우 맥을 이어가며 심화발전할 수 있었죠.

현대에 들어 대만의 명리학자 하건충에 의해 궁성이론이 발전하는데요. 대만에서는 현재 투파(명징파)와, 맹인들에게만 고유하게 전수되던 이론인 맹파명리가 주류를 이룬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아베 다이장(아부태산)이 중일전쟁 이후 중국의 고서들을 수집해서 일본으로 가져와 연구한 후, 월령 분일용사법을 발전시키죠. 십이운성 이론을 세분화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아베 다이장의 업적입니다.

아베 다이장의 전집들이 한국으로 건너와 널리 읽히고, 한국에서도 뛰어난 명리학자들이 등장하며 나름 연구와 발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요. 자강 이석영, 도계 박재완, 제산 박재현이 한국을 대표하는 명리학의 빅쓰리로 알려져있습니다.

자강 이석영의 <사주첩경>, 도계 박재완의 <명리요강>은 한국의 명리학을 발전시킨 중요한 저술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몇 달간 블로그에 중국의 역사 상편과 하편, 명리학의 역사 상편을 순차적으로 올렸는데요. 오늘 명리학의 역사 하편을 올리며, 그동안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한반도에서 명리학이 어떠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해왔는지를 정리하는 한편, 오늘날을 살아가는 한국 명리학자들과 그들이 구축한 독자적인 이론들에 대해서도 별도로 다루고 싶었는데요.

시간 관계상 블로그에서는 오늘로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얼마 전 새로 알게 된 분이 제게 “나는 사주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사주는 종교가 아니기에 내세의 구원을 약속하지도 않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다루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욱 행복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를 알려줄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주를 믿는다, 믿지 않는다’ 같은 표현 자체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사주명리학은 북반구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성격, 기질, 건강, 삶을 해석하는 데 있어 나름의 논리와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그 설명 역시 충분히 납득 가능한 수준에 이른다고 봅니다. 그 논리와 체계가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수 많은 임상과 제 삶을 통해 강하게 긍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게 제가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명리학은 오랜 전통을 지닌 학문이지만, 그 형성과 전개 과정에는 여전히 불명확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당장 수 많은 사람들이 사주를 세울 때 쓰는 사주 만세력의 정확한 기원조차 분명하지 않죠.

오행의 개념과 세수 기준 역시 시대에 따라 여러 차례 변화해 왔습니다. 사주를 해석하는 기준 또한 납음오행과 연주 중심의 관점에서, 일간 중심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본래 별개의 사상이었던 오행론은 간지 체계와 결합하였고, 지지에는 지장간의 개념이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어느 시점부터 명리학은 오행과 간지를 넘어, 십성과 육친이라는 사회적 관계 개념으로까지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명리학사를 공부하기 전까지 저는 오행이 목성·금성·토성과 같은 행성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 역시 후대에 형성된 견해로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명리학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내가 배우고 주로 활용하는 이론들이 어떤 흐름을 통해 형성되고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합이나 충, 극, 형, 신살, 십이운성, 허자론, 귀삼합, 십이신살 등 여러 이론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온 과정을 살피다 보면, 내 시야가 한층 넓어지고 보다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참고로 사주명리학의 충, 합, 형 이론은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중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한 인도, 이슬람의 점성학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탄생한 이론입니다.)

하루와 세수의 기준, 균시차 적용 여부, 조후·격국·억부 가운데 어떤 관점이 더 타당한지에 대한 문제, 그리고 신살이나 십이운성 등을 배제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까지, 현대 명리학에는 다양한 쟁점들이 상존해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이론들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죠.

새로운 관점과 이론이 등장해야 명리학의 발전이 이루어지겠지만, 현재 한국 명리학계의 풍토는 여전히 아쉽기만 합니다. 자기가 만든 사주 이론만 옳고, 다른 사람의 이론과 견해는 무조건 틀렸다며 배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신의 견해를 절대화하고, 타인에 대한 존중 없이 자기를 포장하는 일부 명리학자들의 위선이나 태도가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주명리학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통계를 비롯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이 뒷받침되어야 될 겁니다만, 우선 스스로에게 내제된 맹목적인 확신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자신을 점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명리학의 역사를 공부하는 겁니다.

명리학의 역사를 공부하는 시간은 특정 이론만을 절대화하기보다, 내가 가진 관점과 주로 활용하는 이론들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학문적 외연을 확장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제 글을 읽는 독자분들에게도,
이와 같은 시간이 되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명리학의 역사 상편, 하편을 읽으면서 공부한 내용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연대표를 만들었습니다.

첫 장에는 연대표가, 두 번째 장에는 주석이, 세 번째 장에는 중국사 연대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위 자료 중 중국사 연대표 부분은 네이버 블로그 <스텝, 하루한장>의 제이 선생님께서 만드신 ‘중국 역사 연대표’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사전에 제이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원본을 참고하여 내용을 일부 수정 보완했습니다. 귀한 자료를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제이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위 자료는 현대 명리학의 뿌리를 이루어왔던 여러 이론들의 발전사를 정리한 이미지입니다.

위 자료들 모두 공부하시는데 편하게 활용하세요.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초명 드림

<참고자료>
저서 『한국명리학의 역사적 연구』, 구중회, 2013, 국학자료원
저서 『명리학사』, 2017, 김기승, 나혁진, 다산글방
저서 『음양오행론의 역사와 원리』, 2017, 김기승, 이상천, 다산글방
저서 『명리학의 이해』, 2018, 루즈지, 사회평론아카데미
저서 『인물로 보는 중국철학사』, 2019, 김경호, 서영이 외 6명,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저서 『한국사주명리 연구』, 김만태, 2022, 민속원
저서 『사주는 없다』, 이재인, 2024, 바다출판사
저서 『사주의 탄생』, 김두규, 2017, 홀리데이북스
저서 『믿을 수 없는 사주 믿고 싶은 사주』, 김두규, 2023, 홀리데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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